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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서쪽으서 뜨겄구나?”

윤 직원 영감은 아들의 이렇듯 부르지도 않은 걸음을, 더욱이나 안방에까지 들어온 것을 이상타고 꼬집는 소립니다. / “……멋허러 오냐? 돈 달라러 오지?” / “동경서 전보가 왔는데요…….”

지체를 바꾸어 윤 주사를 점잖고 너그러운 아버지로, 윤 직원 영감을 속 사납고 경망스런 어린 아들로 둘러놓았으면 꼬옥 맞겠습니다. / “동경서? 전보?” / “종학이 놈이 경시청에 붙잽혔다구요!” / “으엉?”

외치는 소리도 컸거니와, 엉덩이를 꿍 찧는 바람에, 하마 방구들이 내려앉을 뻔했습니다. 모여 선 온 식구 가 제가끔 정도에 따라 제각기 놀란 것은 물론이구요.

 

윤 직원 영감은 마치 묵직한 몽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양, 정신이 멍해서 입을 벌리고 눈만 휘둥그랬지, 한동안 말을 못 하고 꼼짝도 않습니다. / 그러다가 이윽고 으르렁거리면서 잔뜩 쪼글트리고 앉습니다.

, 웬 소리냐? 으응? 으응?…… 거 웬 소리여? 으응? 으응?”

그놈 동무가 친 전본가 본데, 전보가 돼서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

윤 주사는 조끼 호주머니에서 간밤의 그 전보를 꺼내어 부친한테 올립니다. 윤 직원 영감은 채듯 전보 를 받아 쓰윽 들여다보더니 커다랗게 읽습니다. 물론 원문은 일문이니까 몰라보고, 윤 주사네 서사 민 서방 이 번역한 그대로지요. / “종학, 사 관계 , 경청에 피검! ……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다냐?”

종학이가 사상 관계로 경시청에 붙잽혔다는 뜻일 테지요!” / “사상 관계라니?”

그놈이 사회주의에 참예를…….” / “으엉?”

아까보다 더 크게 외치면서, 벌떡 뒤로 나동그라질 뻔하다가 겨우 몸을 가눕니다.

윤 직원 영감은 먼저에는 몽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같이 멍했지만, 이번에는 앉아 있는 땅이 지함(地陷)을 해서 수천 길 밑으로 꺼져 내려가는 듯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단코 자기가 믿고 사랑하고 하는 종학이의 신상을 여겨서가 아닙니다.

윤 직원 영감은 시방 종학이가 사회주의를 한다는 그 한 가지 사실이 진실로 옛날의 드세던 부랑당 패가 백 길 천 길로 침노(侵擄)하는 그것보다도 더 분하고, 물론 무서웠던 것입니다.

()나라를 망할 자 호(: 오랑캐)라는 예언을 듣고서, 변방을 막으려 만리장성을 쌓던 진시황, 그는 진나라를 망한 자 호가 아니요, 그의 자식 호해(胡亥)임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죽었으니, 오히려 행복이라 하겠습니다. / “사회주의라니? 으응? 으응?……

윤 직원 영감은 사뭇 사람을 아무나 하나 잡아먹을 듯, 집이 떠나게 큰 소리로 포효(咆哮)를 합니다.

……으응? 그놈이 사회주의를 허다니! 으응? 그게, 참말이냐? 참말이여?”

허긴 그놈이 작년 여름 방학에 나왔을 때버틈 그런 기미가 좀 뵈긴 했어요!”

그러머넌 참말이구나! 그러머넌 참말이여, 으응!……

윤 직원 영감은 이마로 얼굴로 땀이 방울방울 배어 오릅니다.

……그런 쳐 죽일 놈이, 깎어 죽여두 아깝잖을 놈이! 그놈이 경찰서장 허라닝개루, 생판 사회주의 허다 가 뎁다 경찰서에 잽혀? 으응? …… 오사육시를 헐 놈이, 그놈이 그게 어디 당헌 것이라구 지가 사회주의를 히여? 부자 놈의 자식이 무엇이 대껴서 부랑당 패에 들어?…….”

아무도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섰기 아니면 앉았을 뿐, 윤 직원 영감이 잠깐 말을 그 치자 방 안은 물을 친 듯이 조용합니다. /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오죽이나…….”

윤 직원 영감은 팔을 부르걷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땅 치면서 성난 황소가 영각을 하듯 고함을 지릅니다.

화적패가 있너냐아? 부랑당 같은 수령(守令)들이 있더냐?…… 재산이 있대야 도적놈의 것이요, 목숨은 파리 목숨 같던 말세(末世)넌 다 지내가고오……. 자 부아라, 거리거리 순사요, 골골마다 공명헌 정사(政事), 오죽이나 좋은 세상이여……. 남은 수십만 명 동병(動兵)을 히여서, 우리 조선 놈 보호히여 주니, 오 죽이나 고마운 세상이여? 으응?…… ㉤제 것 지니고 앉어서 편안허게 살 태평 세상, 이걸 태평천하라구 허는 것이여, 태평천하!…… 그런디 이런 태평천하에 태어난 부자 놈의 자식이, 더군다나 왜 지가 떵떵거리구 편안허게 살 것이지 어찌서 지가 세상 망쳐 놀 부랑당 패에 참섭(參涉)을 헌담 말이여, 으응?”

 

땅 방바닥을 치면서 벌떡 일어섭니다. 그 몸짓이 어떻게도 요란스럽고 괄괄한지, 방금 발광이 되는가 싶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모여 선 가권(家眷)들은 방바닥 치는 소리에도 놀랐지만, 이 어른이 혹시 상성(喪性)이 되지나 않는가 하는 의구의 빛이 눈에 나타남을 가리지 못합니다.

……착착 깎어 죽일 놈!…… 그놈을 내가 핀지히여서, 백 년 지녁을 살리라구 헐걸! 백 년 지녁 살리라구 헐 테여……. 오냐, 그놈을 삼천 석 거리는 직분[分財]히여 줄라구 히였더니, 오냐, 그놈 삼천 석 거리를 톡톡 팔어서, 경찰서으다가 사회주의 허는 놈 잡어 가두는 경찰서으다가 주어 버릴걸! 으응, 죽일 놈!”

마지막의 으응 죽일 놈 소리는 차라리 울음소리에 가깝습니다. / “……이 태평천하에! 이 태평천하에…….”

쿵쿵 발을 구르면서 마루로 나가고, 꿇어앉았던 윤 주사와 종수도 따라 일어섭니다.

……그놈이, 만석꾼의 집 자식이, 세상 망쳐 놀 사회주의 부랑당 패에, 참섭을 히여, 으응, 죽일 놈! 죽일 놈!”

연해 부르짖는 죽일 놈 소리가 차차로 사랑께로 멀리 사라집니다. 그러나 몹시 사나운 그 포효가 뒤에 처 져 있는 가권들의 귀에는 어쩐지 암담한 여운이 스며들어, 가득히 어둔 얼굴들을 면면상고(面面相顧), 말할 바를 잊고, 몸 둘 곳을 둘러보게 합니다. 마치 장수의 죽음을 만난 군졸들처럼…….

- 채만식, <태평천하(太平天下)>

 

<보기>를 참고하여 [][]를 이해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채만식이 <태평천하>를 쓸 당대는 정치적으로 군국주의의 비상 체제 아래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었으며, 문화적으로는 진보적 활동에 대한 제약이 심했던 시대였다. 이러한 사회적 여건으로 인해 문학은 위축되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한 모색 중 하나가 전통 문학에 내재된 대중성 있는 요소에 대한 관심이었다. 판소리 서사 형태에 조예가 깊었던 채만식은, 이야기 각 부분의 독자성을 중시하는 판소리 서사 구조와 판소리 설화체를 통해 구현되는 인물의 희극미를 <태평천하>에 전면적으로 수용하였다. <태평천하>의 인물에 <흥부전>속 놀부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도 희극미 수용의 영향 때문이다. 채만식은 발달된 근대적 소설 양식에 전통적인 문학 요소들을 수용함으로써 문학의 재창조를 이룩하게 된 것이다.

 

[]에 드러난 부자로서의 놀부의 모습을 1930년대 현실에 가미함으로써 []에서 윤 직원이라는 근대 부자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군.

[]의 박타는 사건과 똥 벼락 사건이 지닌 독자성이 []가 창작될 당시에 문학의 위축을 극복할 대안으로 대두됨으로써 []에도 드러나게 된 것이로군.

[]놀부는 재물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데 비해, []윤 직원은 권력과 같은 사회적 욕망까지 추구하는 인물로 심화되어 나타난다고 볼 수 있군.

[]에서 놀부가 우스꽝스럽게 그려진 것처럼 []윤 직원또한 체통에 어긋난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전통적인 인물의 희극미가 수용된 것으로 볼 수 있군.

[]놀부가 박에서 기대와 달리 헛된 것만 얻어 몰락하는 구조는, []에서 윤 직원이 믿었던 종학에게 배신당하며 몰락하게 되는 구조로 유사하게 수용되었다고 할 수 있군.

 

 

채만식, <태평천하>

해제 : 이 작품은 1938<조광>천하태평춘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소설로, 윤 직원 일가의 비윤리적이고 반사회적인 삶의 모습을 제시하여, 당대 사회의 모순과 중산층의 삶의 태도를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윤 직원 일가의 사람들은 모두가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는 부패한 지방 수령이나 일제의 식민지 체제에 안주하면서 자신들의 이윤 추구나 주색잡기에 급급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이런 그들의 모습을 전면에 내세워 한바탕 추켜세우는 듯 서술하는 방식으로 그들의 추악한 삶의 모습에 대한 희화화를 시도한다.

주제 : 개화기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윤 직원 일가의 타락한 삶과 몰락 과정 / 부정적인 인물들을 통해서 파악한 일제 강점기 퇴락한 삶에 대한 비판

전체 줄거리 : 친일파 대지주인 윤 직원 영감은 구한말에 화적 떼에게 아버지를 잃은 경험이 있다. 이런 집안 내력으로 인해 윤 직원은 일제의 권력과 결탁하여 고리대금업으로 재산을 늘리고 그것을 지키는 데 급급해한다. 돈으로 족보를 사서 만들고 기생 춘심에게 흑심을 품기도 하지만 궁극적인 관심은 재산을 늘리고 지키는 일이므로, 그는 손자들이 군수와 경찰서장이 되기를 열망한다. 그러나 아들 창식은 노름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기만 하고, 장손인 종수는 주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이어 간다. 경찰서장이 될 것이라며 가장 기대를 걸었던 둘째 손자 종학은 일본 유학 중 사회주의 운동으로 피검된다. 화적패 등에게 재산의 위협을 받을 일이 없는 일제 치하를 태평천하로 생각하는 윤 직원 영감은 종학의 행태에 분노하며 좌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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