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될 양으로 박을 심었다가 다수한 재산을 다 패하고 전후에 없는 고생과 매 맞은 일이며 끝에 와서는 온 집안사람이 당동 소리로 병신이 되니 이런 분하고 원통한 일이 어데 있으리오.”
일변 낫을 가지고 동산으로 올라가서 박 덩굴을 함부로 오려 버릴새 뵈지 않는 덩굴 밑에 ⓐ박 한 통이 그 저 있으되 크기가 인경1)만 하고 무게가 천 근이나 되는지라.
놀부가 그걸 보더니 분한 생각은 눈 슬 듯하고 허욕이 버썩 나서 혼잣말로,
“㉠그러면 그렇지, 인제야 보물 든 박을 얻었도다. 무게를 보아도 금이 많이 든 모양이요, 또 재물이 많이 든 고로 남의 눈에 띄지 아니하려고 덩굴 속에 숨어 있는 것을 모르고 공연히 한탄을 하였으며 그 전 박통 에서 나온 초라니 말이 금이 들기는 어느 박통에 들었으리라 하더니 그 양반 말이 과연 옳도다. 황금 든 박이 여기 있는 줄 알았더면 다른 박을 타지 말고 이 박을 먼저 켰을 것을.”
희불자승(喜不自勝)2)하여 그 박을 따 가지고 내려오며,
“좋을 좋을 좋을시고, 지화자 좋을시고. 곱사등이 같은 박복한 놈 시종(始終)을 아니 보고 달아났으니 제 복이 그뿐이로다.” / 놀부 계집 내달아 하는 말이,
“그만두오, 그만두오. 박에 신물도 아니 납나? 만일 또 불량한 박이 나오면 어쩌려고 박을 또 따 가지고 옵나?” / 놀부 이른 말이,
“방정맞고 요사한 년 물렀거라. 이 박은 정통 금박이니 재물이라면 넨들 아니 귀히 되랴. 잔말 말고 우리 두 양주 정성들여 켜 봅세.” / 박을 앞에 놓고 톱을 대어 탈새,
“슬근슬근 톱질이야, 당기어 주소 톱질이야.”
슬근슬근 타다가 반쯤 켜고 놀부가 우선 궁금증이 나서 박 속을 기웃이 들여다보니 그 속이 아주 싯누런 것이 온통 황금 같거늘 놀부 보다가,
“수 났구나, 그럼 그렇지. 마누라, 자네도 이 박 속을 들여다보소. 저 누런 것이 온통 황금덩일세.”
놀부 아내 하는 말이,
“누른 것을 보니 금인가 싶으오마는 그 속에서 구린내가 물큰물큰 나니 그것이 웬일이오?” / 놀부 이른 말이,
“자네도 미혹한 말 조금 하소. 박이 더 익고 덜 익은 것이 있으니 이 박은 아주 농익은 고로 구린 냄새가 나는 줄을 모른단 말인가? 어서 바삐 타고 보세.”
슬근슬근 칠팔 분이나 타다가 놀부 양주 궁금증이 또 나서 톱을 멈추고 양편에 마주 앉아 들여다보니 별 안간 박 속에서 모진 바람이 쏘아 나오며 벼락같은 소리가 나더니 똥 줄기가 무자위3) 줄기처럼 내쏘는지라. 놀부 양주가 똥 벼락을 맞고 나동그라지며 똥 줄기는 천군만마가 달려 나오는 듯 태산을 밀치고 바다를 메울 듯 삽시간에 놀부 집 안팎채에 가득하니 놀부 양주 온몸이 황금덩이가 되어 달아나 멀찍이서 바라보니 온 집 안이 똥에 묻혔는지라. 만일 왕십리 거름 장사가 알게 되면 한밑천 잡게 되었더라. 놀부 놈이 기막혀 발을 동동 구르며 하는 말이,
“여보 마누라, 이 노릇을 어찌하잔 말이오. 재물을 얻으려다가 수다히 있는 재물 다 탕진하고 나중은 똥으로 하여 의복 한 가지 없게 되니 어린 자식들과 장장 하일(夏日)에 무엇 먹고 살아나며 동지섣달 설한풍에 무엇 입고 사잔 말이오. 애고애고, 설운지고.”
이처럼 땅을 두드리며 통곡할 제 앞뒷집에 사는 양반 제집까지 똥이 밀려가서 그득한지라. 그 양반들이 공론하고 고두쇠를 벼락같이 부르더니 놀부 놈을 즉각 잡아오라 분부한다. 고두쇠 놈이 워낙 놀부 놈을 미워하는 터이라 조총(鳥銃)같이 달려가서 놀부 놈의 덜미를 퍽퍽 짚어 풍우같이 몰아다가 생원님 앞에 꿇린 대, 생원님이 호령하되,
“이놈 놀부야, 듣거라. 네가 본디 부모에 불효하고 형제간 불목하고 일가에 불화하고 다만 재물만 아니, 도적보다 더 심할뿐더러 무슨 몹쓸 짓을 하다가 동내 양반이 귀가 시끄럽게 네 집에 환란이 첩출(疊出)하여 패가망신을 하니 그는 네 죄에 싼 일이어니와 네 죄로 하여 동내 양반 이 똥으로 못살게 되니 그런 죽일 놈이 어데 있으리오. 네 죄는 종속소기(從俗所期)4)려니와 우선 양반 댁에 쌓인 똥을 해전에 다 쳐내되 만일 지체를 할 지경이면 죽고 남지 못하리라.”
하고 일변 고두쇠를 호령하여 놀부를 결박하여 절굿공이 찜질을 하며 기왓장에 꿇려 앉히고 똥 쳐내기 전은 끌러 놓지 말라 하니, ㉡놀부 놈 가뜩 망극 중 기가 막히어 아무 말도 못 하다가 기왓장에 꿇어앉은 채 제 계 집을 시켜 돈 오백 냥을 갖다 놓고 빨리 삯군을 놓아 왕십리, 안감내, 이태원, 둔짐이, 청파, 칠패 여러 곳에 있는 거름 장사들을 있는 대로 불러다가 삯을 후히 주고 똥을 쳐낸 후에야 놀부가 겨우 놓여 와서 부부 서로 붙들고 갈 곳이 없어 통곡하더니, 이때 흥부가 놀부의 패가망신함을 알고 대경하여 일변 노복(奴僕)을 시켜 교자(轎子) 두 채와 말 두 필을 거느리고 친히 건너와 놀부 양주와 조카를 교자에 태우고 말을 태워 제 집으로 돌아와 일변 안방을 치우고 안돈(安頓)시킨 후 의식을 후히 하여 때로 공궤(供饋)5)하며 날로 위로하고 일변으로 좋은 터를 정하여 수만금을 들여 집을 제 집과 같이 짓고 세간 집물이며 의복 음식을 한결같이 하여 그 형을 살게 하니 놀부 같은 몹쓸 놈일망정 흥부의 어진 덕에 감동하여 전일을 회과(悔過)하고 형제 서로 화목하여 남에 없는 형제가 되니라. 흥부 내외는 부귀다남하여 향수(享壽)6)를 팔십 하고 자손이 번성하여 개개 옥수경지(玉樹瓊枝)7) 같아 가산이 대대로 풍족하니 그 후 사람들이 흥부의 어진 덕을 칭송하여 그 이름 백세에 민멸(泯滅)8)치 아니하더라.
- 작자 미상, <흥부전(興夫傳)>
[어휘 풀이] 1) 인경: 조선 시대에, 통행금지를 알리거나 해제하기 위하여 치던 종. 2) 희불자승: 어찌할 바를 모를 만큼 매우 기쁨. 3) 무자위: 물을 높은 곳으로 퍼 올리는 기계. 4) 종속소기: 시속(時俗)에 따라 처리함. 5) 공궤: 음식을 줌. 6) 향수: 오래 사는 복을 누림. 7) 옥수경지: 옥으로 만든 나무와 그 가지.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일컬음. 8) 민멸: 자취나 흔적이 아주 없어짐.
[가]에 대한 [학습 활동]을 수행한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학습 활동] 아래의 내용을 참고하여 <흥부전>을 읽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흥부전>은 윤리적 판단력 강조, 생명체에 대한 존중, 진심 어린 보은, 행동의 순수 동기, 형제간의 바람직한 관계 모색 등과 관련하여 교육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되고 있다. 다음은 <흥부전>의 구조로, [가]는 작품의 결말 부분에 해당한다.
다친 제비를 불쌍히 여겨 흥부가 제비 다리를 고쳐 주니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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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영화를 노리며 놀부가 제비 다리를 고쳐 주니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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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을 탔더니 온갖 보물이 쏟아져 흥부가 부귀영화를 얻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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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을 탔더니 부정한 것들이 쏟아져 놀부가 패가망신함. |
① 흥부와 놀부가 선악으로 병치됨으로써 독자들의 윤리적 판단력을 길러 주는 효과가 있어.
② 제비 다리를 고쳐 주는 흥부의 선행을 통해 생명체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는 효과가 있어.
③ 다리를 고쳐 준 흥부에게 박씨를 가져다주는 제비의 행위를 통해 보은의 도리를 강조하는 효과가 있어.
④ 놀부가 모방 행위로 인해 징벌을 받은 것은 행동의 동기가 순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효과가 있어.
⑤ 제비가 박씨를 물어 오는 반복적인 장치를 통해 일상적인 형제간의 갈등이 우애를 돈독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어.
작자 미상, <흥부전>
• 해제 :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흥부와 놀부의 우애에 관한 도덕적 관념을 주제로 다루고 있는 고전 소설이다. 그러나 이면에는 몰락하는 양반 사회와 서민들의 곤궁한 생활상에 대한 내용을 통해 사회 경제적인 갈등도 다루고 있다. 착한 흥부와 욕심 많은 놀부의 대비가 큰 축을 이루며 전개되는 이 작품은 탐욕스러운 놀부가 벌 을 받고 이를 흥부가 감싸는 결말로 이어지는데, 이런 전개가 가혹하고 비극적인 분위기보다 다분히 해학적인 분위기로 전개된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이 작품이 당시의 사회적 폐해나 그로 인한 비극적인 삶에 대해 절망하기보다 웃음을 통해 시련을 극복해 내는 서민 특유의 건강한 방식을 형상화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주제 : 형제간의 우애 / 권선징악, 인과응보
• 전체 줄거리 : 심술 고약한 형 놀부와 순하고 착한 아우 흥부가 살았는데, 놀부는 부모의 유산을 독차지한 후 흥부를 내쫓고, 쌀을 구하러 온 흥부에게 매질까지 하며 혹독하게 군다. 어느 날 흥부는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치료해 주는데, 이듬해 그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준다.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를 심어 수확한 박에서 금은보화 가 쏟아져 흥부는 큰 부자가 된다. 이 소식을 들은 놀부는 제비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린 후 다시 고쳐 준다. 제비는 놀부에게도 박씨를 물어다 주었으나, 놀부의 박에서는 온갖 부정한 것들이 쏟아져 나와 놀부는 몰락한다. 놀부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흥부는 놀부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고, 이에 놀부는 개과천선한다. 이후 형제는 화목하게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