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오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오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 악수를모르는왼손잽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든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햇겠오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거울속의내가있오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꽤닮았오.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가톨릭 청년 5호, 1933.10)
* 외로된 : 한 쪽으로 치우친. 어떤 일에 골몰한.
●작품의 해제
○갈래 : 초현실주의시, 자유시, 관념시, 상징시
○성격 : 자의식적, 주지적, 심리적, 관념적
○어조 : 냉소적, 자조적 어조
○기법
① 자동 기술법
② 기존형식의 부정(띄어쓰기 무시)
○표현 : 역설적 표현
○제재 : 거울에 비친 ‘나’
○주제 : 현대인의 자의식 분열에 대한 고뇌
●작품의 감상
여기서 거울은 자기 성찰의 한 방편이다. 그 거울을 통하여 시인은 일상에 매몰된 채 망각한 ‘나’ 본연의 모습을 본다. ‘거울아니었든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햇겠오’는 자기 성찰의 기회가 없이 자아의 탐구가 불가능하다는 말일 터이다. ‘거울 속의 나’가 객관화된 ‘나’라면, 자아를 발견하려는 주관적인 의지에 관계없이 객관적인 ‘나’는 존재한다. 그것이 이 시에는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거울속의내가있오’라고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일상적인 ‘나’와 객관화된 ‘나’ 사이의 거리감이다. ‘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가 뜻하는 바는 자기 소외의 감정이다. ‘나’는 ‘거울 속의 나’, 즉 자기 자신의 본연의 모습에 대해 서먹서먹해 하고 곤혹을 느낀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거울 속의 나’에게 말을 걸고 악수를 청하지만 끝내 결렬된다. 이미 일상의 ‘나’와 본연의 ‘나’가 화해에 이를 수 없을 만큼 분열되어 있는 것이다. 일상의 허위에 길든 ‘나’의 눈으로는 ‘거울 속의 나’가 하는 것이 진실된 것으로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비정상적이고 ‘외로된 사업’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하려 든다. 그런데 사실 진찰받아야 할 사람은 ‘거울 속의 나’가 아니라 일상의 ‘나’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일상의 거짓에 매몰된 자신의 허위를 고발하는 하나의 역설(逆說)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