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 부근(星湖附近)
- 김광균
(1)
양철로 만든 달이 하나 수면(水面) 위에 떨어지고
부서지는 얼음 소래가
날카로운 호적(呼笛)같이 옷소매에 스며든다.
해맑은 밤바람이 이마에 나리는
여울가 모래밭에 홀로 거닐면
노을에 빛나는 은모래같이
호수는 한 포기 화려한 꽃밭이 되고
여윈 추억(追憶)의 가지가지엔
조각난 빙설(氷雪)이 눈부신 빛을 발하다.
(2)
낡은 고향의 허리띠같이
강물은 기일게 얼어붙고
차창(車窓)에 서리는 황혼 저 머얼리
노을은
나어린 향수(鄕愁)처럼 희미한 날개를 펴고 있었다.
감상의 초점
시각적 영상으로 달빛이 호젓하게 비친 차가운 겨울 호수의 풍경을 스케치하듯 그렸다. 이에 따라 시적 화자의 감정도 기복을 보인다. 회화적 이미지 구사로 잘 알려진 시인 특유의 비유 형상 능력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달을 ‘양철’로, 겨울 호수를 ‘은모래’와 ‘화려한 꽃밭’으로 나타내고 있음에 유의하자. 화자의 감정의 기복을 행간(行間)에 따라 유추함으로써 ‘성호 부근’의 겨울 호수의 풍경이 더 선명하게 떠오르게 된다.
성격 : 회화적
심상 : 시각적 심상
시상 전개 : 공간의 이동
구성 : 1. 달빛이 비친 겨울 호수의 모습
① 차가운 겨울 호수의 모습(1연) : (달=양철)
② 호숫가를 쓸쓸히 거님(2연) : (겨울 호수=은모래)
③ 추억(환상) 속에 떠오르는 영상(3연) : (겨울 호수=화려한 꽃밭)
2. 황혼 무렵의 차창 밖 풍경
④ 떠오르는 고향의 모습(4연)
⑤ 황혼녁의 차창을 통해 본 풍경(5연)
제재 : 호수
주제 : ① 달빛이 비친 겨울 호수의 모습
② 겨울의 서정
이 시는 화화적 이미지 구사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1은 달빛 내려 비친 겨울 호수의 모습을, 2는 황혼 무렵의 차창 밖 풍경을 그리고 있다. 1의 세 연은 ‘차가운 겨울 호수의 모습’과 ‘호숫가를 거니는 시적 화자의 모습’, 그리고 ‘그의 환상 속에 떠오르는 추억의 영상’을 순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양철로 만든 달’과 ‘부서지는 얼음’으로 대표되는 날카롭고 음산한 금속성의 이미지로 겨울 호수를 형상화한 첫째 연에 이어 둘째 연에서는 그것을 바라보며 걷는 화자의 고독한 모습을 제시하고 있으며, 셋째 연에서는 ‘화려한 꽃밭’과 ‘눈부신 꽃’의 따스하고 밝은 이미지로 호수를 변형시켜 나타내고 있다.
차갑고 날카로운 겨울 호수의 모습을 바라보며 쓸쓸해하던 화자는 호수에 얽힌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추억에 빠져들면서 차츰 어두운 분위기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에 따라 달빛 비치는 겨울 호수의 차가운 이미지는 이내 화려하고 따스한 이미지로 변형되지만, 그런 마음도 잠시뿐이다. 그러므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2에서 ‘차창에 서리는 황혼’의 붉은 노을이 되어 ‘희미한 날개를 펴고’ 화자를 더욱 슬프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