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고기압이 한반도를 이불처럼 덮었다는 날에 나는 주차장을 찾았다. 서너 달 전에 가벼운 접촉사고가 있었고 그 때 생긴 보조석 문짝의 작은 흠을 조금이라도 지워볼까 생각했다. 이미 오래전에 그 흠을 지우기 위해 몇 가지 검색을 했고 색깔에 맞는 임시방편용 작은 붓페인트를 사 놓았다. 차에 어떤 치장을 더하거나 애지중지하거나 하지 않고 단순하게 차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어쩌면 그런 것조차 귀찮음의 대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 여기저기 행색이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 무더위에 나간 건 아마도 움직여야겠다는 의지였을 것이다. 무언가 답답한 마음이거나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짓눌려 있던 엉덩이살들에 미안함이 조금 있기도 했을 것이다. 이미 사전 작업을 조금 해두었기에 내려쬐는 볕을 무시하고 얼른 작업을 마치려고 했다. 그랬다. 트렁크를 열고 화이트보드에 쓰는 매직처럼 생긴 붓페인트을 꺼내려는데, 또 아주 오래 전에 사두기만 하고 그냥 놓아두었던 와이퍼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언제 장착할래? 그래 이것도 간단한 일인데, 아직도 안 하고 있었으니 얼른 같이 해보자. 그래 해줄게. 대충 이런 생각들이었다.
날이 너무나도 뜨거웠기 때문에 신중하면서도 빠르게 작업을 마치려고 했다. 페인트 작업 끝. 그리고 와이퍼 차례. 사전에 뭔가를 꼼꼼하게 준비하는 성격도 아니고, 아주 가끔하는 작업이다보니, 너무 늦게 깨달았다. 지금 이 일을 하기에는 너무 덥다는 것을. 땀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자 미련한 스스로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손이 빨라도 이런 날씨에는 무리지, 그래도 어째, 시작했는데.
유막 제거가 어쩌고 리프래쉬인지 린스인지가 왜 유리에 필요한지도 짜증났지만, 빨리 해치우려고만 했다.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의 마지막 구절을 떠올리는 일이 요즘 잦다. 스스로가 얼마나 분별하는 힘이 없는지, 나이들어가면서 감각이 어느 한쪽으로만 기형적으로 늘어나고 울퉁불퉁해지는지.
교체하고 와이퍼를 작동시킨다. 그런데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 보조석의 와이퍼가 앞유리창 밖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넘어가버린다. 놀라서 작동을 중지시켰다. 그런데도 몇 번을 더 왔다갔다 하다가 멈춘다. 난리도 아니다. 에어컨을 켰지만 차안은 이미 그대로 찜통이다. 뜨거운 바람과 짜증이 땀을 한번에 짜내고 있었다. 와이퍼는 흔들거리며 나를 비웃는다. 약간의 당황과 엄청난 짜증이 섞이고 거기에 허망함과 미련함이 얹어졌다.
그렇게 조금 멍하니 앉아 있다가 원래 와이퍼로 다시 바꿔 끼웠다. 원래의 것으로 바꾸었으니까 괜찮아야 하지만 여전히 보조석의 와이퍼가 창밖으로 나가버린다. 와이퍼암이 긁히고 필러 부분이 긁히고. 이건 뭔가. 나는 한참을 알지 못했다. 몸의 수분이 절반 가까이 빠졌다고 생각하고 누굴 불러서 도움을 청할까 유튜브를 찾아볼까 교체할 때의 설정 같은 게 따로 있을까 고민하다가 운전석쪽의 와이퍼는 너무 짧고 보조석쪽의 와이퍼는 너무 긴 게 눈에 들어왔다.
아르키메데스는 기뻤겠지만, 나는 허탈하고 두려웠다. 이런 어리석음에. 예전 같으면 분명 이런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이걸 뭘로 설명해야 할까. 왜 이런 단순함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거의 대부분의 차가 운전석과 보조석의 와이퍼 크기가 다른데 왜 알아차리지 못하고 당황했을까. 더위 탓일까. 그럴 수도 있지. 그렇다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일까.
워셔액을 쏘며 와이퍼는 이제 적상적으로 움직인다. 서정주의 시에서처럼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이러면서. 그렇지만 하나도, 전혀, 괜찮지 않은 마음이었고 지금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