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뭔가 꼼꼼하게 챙기는 편이 아니다. 특히 시간 관리나 일정이 그렇다. 무슨 일이 어디서 몇 시에 있는지 또 그 모임은 무엇인지 알기는 하지만, 늘 대충 알고 행동한다. 이런 나의 습관(?) 때문에라도 나는 늘 메모하거나 일정관리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 일이 있은 뒤로도 여전히 마찬가지다.
그 일의 대강은 이렇다.
출장을 가게 되었다. 무슨 일인지는 알고 무슨 요일인지도 알고 정확히 몇 시인지도 알았다. 그래서 시간을 맞춰 그곳에 갔다. 하지만 내가 간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떤 회의에 참석하게 된 것인데, 내가 확실하게 믿고 갔던 그 장소에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문도 잠겨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당황했다. 아, 회의 장소가 바뀌었거나 내가 확신했던 이 장소가 아닐 뿐이다. 나는 차분하게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받지 않는다. 시간을 보니 정시에 회의가 시작되었다면 전화를 받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할까. 혹시 다른 장소라면, 내가 알만한 다른 장소라면? 나는 주위를 배회했다. 시간이 점점 흐르고 있었고 조금씩 마음이 조급해졌다. 옆 건물의 다른 회의실도 찾아가 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나는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오늘 나의 출장에 대해 확인해줄 만한 다른 누군가를 찾았다. 다행히 확인이 가능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나는 당황하면서 내가 먼지만큼 작아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회의가 있었다. 짧은 시간 짧은 공간의 이동이었지만 너무 놀라서 스스로를 자책하고 또 의심했다. 이제 나는 이렇게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가는구나. 더 나이가 들면 더 분별없는 생각과 행동을 하겠구나. 이런 생각들이 가득해 스스로에 대해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의실에 도착했을 때는 한참이 지나서였다. 거기 들어서면서 또 문제를 발견했다. 조용히 진행되는 회의 상황에서, 참석자 모두가 보내준 책자(이미 오래 전에 받아 둔)를 보고 있었다. 회의 자료도 메일도 보내주었다고 한다. 나는 아무 것도 없었다. 전혀 준비가 안 되었으며, 단순히 회의에 참석하는 것 뿐이었다. 이전 회의 시간에 이미 안내가 되었다고 하는데, 언제 저런 말을 했을까. 도무지 기억이 없다. 혼자 책상 위에 아무 것도 없이 앉아 있는 모습이 안 됐는지, 옆 사람이 자신이 보던 자료들을 건네주었다. 부끄러웠다. 자료도 보는 둥 마는 둥.
이 일은 나에게 크나큰 충격이었다. 아무 준비도 안 하고 지내왔던 삶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실제로는 작은 문제들이 있었겠지만) 지난 시간들 속에서 그저 얼렁뚱땅 해결했었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어렵게 돼버렸다.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니까. 또 사전에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니까.
그럼에도 나는 여전하다. 문제는 이거다. 하지만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해서 당장 메모를 하고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고 그러기는 싫다. 키오스크 앞에서 아직 늙지 않은 엄마가 사용법이 어려워 딸에게 전화하며 엄마도 딸도 울었다는 이야기를 라디오에선가 들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