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 속에 처음으로
㉠눈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레이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것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중략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寂寞)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 1960>
●작품의 해제
○성격 : 명상적, 관념적, 상징적
○어조 : 엄숙하고 묵직한 어조(←종결형 어미 ‘-노라’의 반복)
○구성
① 방황 끝의 명상(1-4행)
② 공(空)으로 정화된 세계의 발견(5-9행)
③ 새로운 정신 세계의 열림(10-15행)
④ 정화된 외부 세계의 내면화(16-21행)
○제재 : 눈 내리는 풍경
○주제 : 모든 고뇌와 방황을 씻고 무욕(無慾)의 상태에서 모든 것을 다시 인식하고자 함.
●작품의 감상
시인은 눈 덮인 길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혀 왔던 방황과 고뇌를 가라앉히고 무념 무상(無念無想)의 명상적 경지에 다다르는 체험을 노래하고 있다. ‘눈’은 그 흰 빛깔로 인해 ‘정화(淨化)’의 이미지이며, 모든 것을 너그럽게 감싸 안는다는 의미에서 ‘관용(寬容)’ 내지 ‘포용(包容)’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 눈길은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즉, 지난날의 방황과 고뇌를 정화시켜 포근히 감싸 안는 평온한 상태를 의미한다. 화자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오래도록 방황을 거듭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방황의 끝에서 그는 모든 것을 덮어 버리는 눈을 바라보며 솟구쳐 오르는 벅찬 감동과 희열을 느낀다. 바로 이 순간의 눈 덮인 풍경을 그는 ‘설레이는 평화’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한 ‘눈길’을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인데, ‘안에서는 어둠’이다. 이 어둠은 실제 어둠이 아닌, 마음 속에서 느끼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눈길과 서로 조응되는 이미지이다. 따라서 어둠은 절망적 암흑이 아니라 평화의 경지에 도달한 상태에서 느끼는 어떤 감정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눈’은 ‘겨울’, 즉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방황을 거듭해 온 시인의 삶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 주는 이미지요, ‘어둠’은 ‘눈’으로 덮인 평화의 경지를 바라보며 느끼게 되는 평온하고 고요한 평정심의 의미이다.
1. ㉠의 시상은 ㉡과 ㉢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시적 의미의 발전 과정을 5문장, 200자 이내로 서술하라.
▶‘눈’은 이 시의 모티프이고 지배적 심상이다. ‘눈’은 ‘모든 것’을 덮어 버리고, 곧 삶과 죽음까지도 소멸시켜 버리고 ‘평화’의 세계를 연출한다. 이러한 외부적인 ‘평화’의 풍경은 다시 내면화하여 ‘어둠’이 된다. 실로 화자와 세계의 정서적 융합인 셈이다. 결국 ‘눈’은 화자의 번민과 고뇌와 절망을 정화하여 무념 무상의 경지를 만들기에 이른 것이다.
2. 이 시의 ‘엄숙하고 묵직한 어조’를 형성하는 데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는 언어 조직상의 특징을 15자 이내로 쓰라.
▶종결형 어미 ‘-노라’의 반복
3. ㉢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 한 문장으로 쓰라.
▶그 동안의 방황에서 벗어난 정신적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모든 욕심, 후회, 애증 따위를 지워 버린 무념 무상의 경지를 뜻한다. 그것은 곧 ‘위대한 적막’과 같은 의미이다.(모든 것을 비우고 새로운 빛을 받아들이려 하는 무욕의 상태 혹은 명상의 경지를 뜻한다.)
4. 이 시의 화자가 지나온 삶을 간략히 설명하되, 본문에서 단서가 될 만한 두 시행을 찾아 설명하라.
▶제3행의 ‘온 겨울을 떠돌고’와 제18행의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에서 ‘겨울’은 고통스런 삶을, ‘떠돌고’는 방황하는 영혼을 말한다. 즉, 화자의 과거는 고통 속에서 방황을 거듭해 온 삶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