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132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코로나를 앓고 난 뒤, 앓는 중에 마저 책꽂이를 정리했다. 정리라기 보다는 책의 위치를 바꾸는 정도였지만, 책의 위치가 바뀌는 것과 동시에 과거의 시간을 여기저기 둘러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어느 책을 구입한 가까운 얼마 전까지.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읽고 난 뒤의 충격 - 충격보다는 사실 덜한 느낌이지만, 그 비슷한 느낌과 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의 책들을 꼭 읽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던 때, 두 번씩이나 동인지를 출판했던 그런 기억들까지, 책꽂이에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같은 오래된 책들이 나를 여기저기 끌고 다녔다. 그러고는 무슨 용기에서인지 대여섯 권의 책들을 골라 거실에 옮겨 놓았지만, 활자가 번져보여서 몇 장을 넘기지 못했다. 오히려 활자가 번져보이는 증상이 책을 오래 읽지 못하도록 나를 도와준 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야구장에서 어느 외국인 타자가 타격을 했을 때부터 갑자기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는데, 나에게도 다시 그런 시간이 올까 싶었다. 지금은 글자들이 모두 번져보이거나 뿌옇게 흐려 보여서 이제 안경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늘 들고다니는 스마트폰도 스마트와치도 곧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안경을 써도 몸상태에 따라서는 흐려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렇게 커다란 모니터에 글을 남기는 것도 눈을 잠깐씩 감았다 떠야 할 정도로 최근에는 눈이 더 나빠졌는데, 코로나 이후 그런 느낌이 더 강한 것은 자꾸 마음이 쓰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은 어떻게 해서든지 몇 줄의 글을 남기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제 점점 더 삶을 버티는 것에 대한 의미가 줄어든다고 생각했다. 감정도 삐툴어지고 불안감은 들쑥날쑥하고 기대나 행복을 바란 적도 오래되어서 도대체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의아해할 지경이니까.

  예전에 썼던 소설들도 인쇄된 채로 잘 놓아져 있었는데, 몇 줄 읽어보니 참 열심히 썼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거의 읽혀진 적이 없는 글들이었는데, 스스로 나쁘지 않았던 때라고 생각하며, 지금에서는 시를 쓰겠다고 그럭저럭 몇 줄씩 끄적이는 것이 맞는지, 긴 소설이 힘에 부쳐서 그런 것인지, 다시 긴 글을 - 쓰고 싶었던 긴 글을 쓸 수는 없는지, 잠시 그 예전의 글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었다. 하지만 당장 무엇을 쓰겠다는 것은 아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글도 쓰지를 못한다. 

  왜 글을 쓰지 못할까.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그래서 오늘은 너무나도 쓰기 싫은 글을 쓴다. 어떤 종류의 글이든지 참 버겁다. 그 이유에 대해서 진지하거나 가볍거나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그렇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다시 시작하게 될 어떤 계기가 생기지 않을까, 어떤 시간이 되면 다시 쓰지 않을까, 마냥 그러고만 있다. 이 글은 여기서 멈추고 안경을 벗고 글을 왜 쓰지 않는지, 못 쓰는지에 대해, 그리고 어떻게 하면 몇 줄의 글이라도 다시 쓰게 될까 생각해 보고 싶다.

  너무나도 쓰기 싫은 글을 너무나도 쓰고 싶을 때가 있을 테니까.


오늘의 생각 하나

오늘을 시작하며 혹은 마치며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17 낙엽 어떤글 2022.12.14 120
416 사랑한다는 어떤글 2022.11.12 149
415 장흥에서 어떤글 2022.11.11 111
414 다 소용없는 어떤글 2022.11.10 112
413 버릇 어떤글 2022.11.10 97
412 개기월식 secret 어떤글 2022.11.08 0
411 가을 어떤글 2022.10.07 135
410 four-o'clock 어떤글 2022.10.01 100
409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어떤글 2022.07.15 206
408 무엇을 할까 어떤글 2022.06.22 93
» 너무나도 글이 쓰기 싫다 어떤글 2022.05.09 11329
406 아프니까 좋다 어떤글 2022.04.01 127
405 글을 쓰지 않는 이유 어떤글 2022.03.29 92
404 디어 클라우드 어떤글 2022.03.22 118
403 어떤글 2022.03.17 95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9 Next
/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