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는 병
내 우울은 다소 늙었다 늙었다기 보다는 의뭉스럽게 생겼다 그래서 나는 우울을 조심하는 편이지만 내가 멀리하기에는 어느 순간 불쌍함이 감도 없는 감나무 같기도 해서 그러지도 못하고 파란 달개비꽃처럼 나는 얼굴과 마음을 만들고 누군가에게 마구잡이로 매달려도 보지만 내가 그 우울을 닮아서 우울을 배달하는 우체부 같아 기다리지도 않는데 자꾸 고지서같은 우편물을 꾸역꾸역 집어 넣듯이 여겨졌는지 나는 멀어지고 멀어지고 싶어지고 혼자가 되고 다시 내 우울은 그런 나를 옆에서 자꾸 웃고 있는데, 외려 그게 너무 달갑게 느껴지는 이상한 저녁에 다시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어지고 우울보다는 이제 나의 병이 더 걱정스러워지는데 진작 어떤 것도 떠올리지 못하는 병이라도 걸렸으면 좋았겠었다는 아쉬움을 오랫동안 만지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