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우가 말한다.
그냥 거기 그대로 있었으면 괜찮았을까요? 익숙했던 환경이니까?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이 병의 특성상 아마 나빠졌을거야. 번아웃이 오고 우울해지고 스스로의 기준에 못미치고 자괴감이 들고 이런 순서 아냐? 그렇게 됐으면 옮길 걸, 이라고 후회했겠지? 직장을 옮기고 난 후에 더 안 좋아지니까 옮겨서 그런 건가 이렇게 생각하는 거지.
아마도 그렇겠죠? 그랬을 것 같애요.
직장을 옮기지 않았어도 옮겼어도 어차피 불안장애는 왔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사실은 그걸 의미하는 거지. 좋을 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이럴 땐 그렇게 의미가 부여돼. 그렇지 않아?
부장님도 그러셨어요?
마찬가지지.
환우는 표정이 밝아졌다. 모든 사람들이 같이 비를 맞으면 아무렇지 않지만(비를 기분좋게 흠뻑 맞아 본 경험이 있다.), 다들 우산을 쓰고 있는데, 혼자서 비를 맞고 있을 때의 기분이 아마 지금의 상태일 것이다. 이런 때 같이 비를 맞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그 사람은 우산을 씌워 주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우울증 환자도 우울증 환자를 대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다.
조금 밝은 우울증을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