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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간단한 성장기를 쓰는 이유는 우울의 근원을 생각해 보려고 한 것이다. 언젠가부터 의사는 내 우울과 불안의 근원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의사에게 그렇게 판단할 만한 일들이 있음에도 말하지 않았었다. 일부만 얘기한 것도 있다. 이렇게 간단한 과거를 쓰는 일이 무엇에 도움이 될지는 나도 잘 모른다. 어쩌면 과거로부터 뭔가를 떠올려 보려는 시도일 것이다.

 

제목을 우울의 성장이라고 쓰고 게시판의 빈 공간을 한참 응시했다. 

자서전도 아닌데, 나의 성장을 쓸 일이 있을까. 한번도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새삼스럽게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지금에서야 자랑거리도 아니지만, 난 동네의 영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섯 살 무렵 천자문을 줄줄이 외워서, 시골 동네 멀리까지 소문이 났었다고 들었다. 늦둥이로 태어났고 시골 아이였고 위로는 나이 차가 큰 형과 누나들이 많았다. 영특하다는 잘못된 판단에서였는지 아버지는 나를 자랑거리로 여기셨었다. 실제인지 허구인지 남들 앞에서 천자문을 외웠던 기억도 남아 있다. 

예전 시골에서 하는 놀이들은 돌이나 나무를 가지고 노는 놀이가 전부였다. 여름이면 개구리나 뱀을 잡고 겨울이면 눈 쌓인 산에서 까마귀나 토끼를 쫓던 적도 있었다. 모래나 흙에 구멍을 내고 놀았고 열 살이 넘어서까지 고무신을 신었었다. 이렇게 쓰면 너무 옛날 사람처럼 보이지만(옛날 사람과 요즘 사람의 중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때의 시골에서는 다 그랬다. 그 시골이 대도시가 점점 팽창하면서 이제는 도시의 외곽으로 바뀌었고 과거의 흔적들은 거의 지워져서 사람도 지형도 모두 바뀌어 버렸다.

 

나는 베트남전이 끝나고 전설적인 영국의 프로그레시브락그룹 핑크플로이드의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The Dark Side Of The Moon이 발매된 해에 태어났다. 사진처럼 툭 잘려  남아 있는 기억은 흔한 기와집 지붕의 세 칸짜리 시골집에 - 사방으로 문이 나있고 마루가 있고 방은 창고인지 방인지 잘 모르는 다용도의 공간으로 사용되는 - 200평 정도의 마당이 있는 집이었다. 그 마당에서 바퀴가 하나 빠진 세발 자전거를 타던 어린 아이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돌아가신 부모님은 온갖 일을 다 하시는 농사꾼이었고, 어머니는 가끔 행상도 다니셨다.(이 부분은 상세하게 기록할 일도 아니고 밝게 쓰기도 어렵다.) 마당에는 처음에 텃밭이 있었지만 곧 축사가 지어지고 그 좁은 공간은 소똥이 가득한 곳으로 바뀌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기에는 젖소들이 누워 있었다. 그 좁은 공간에 집이며 축사, 그리고 창고에 텃밭까지. 어릴 때는 넓었던 공간이 자라면서 너무나 좁아 보였고, 그나마 지금은 외지인에게 팔려 모든 집터가 다 사라졌다고 한다.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에는, 그러니까 중학교를 다닐 때에는 경운기 운전을 하며 노동력을 더해야 했다. 철이 없던 나는 이 일이 너무 싫었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대도시 학군으로 편입되면서 중학교는 자연스럽게 도시로 진학하게 되었다. 큰 충격이었다. 도시는 어릴 적 세상에서 가장 높다고 생각했던 산 너머의 세상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영재는 사라지고 평범한 아이가 약간의 촌티를 벗어내면서 뜻밖의 경험들을 하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하였고 도시의 신문물들을 경험하였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 중 하나가 모형항공기 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는데, 비행기를 닮은 그런 게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그때 한 친구가(친하지 않은) 비닐랩을 가져와 날개를 감쌓는데, 그 비닐이 도대체 무엇에 쓰는 것인지 전혀 몰랐었다. 그 친하지 않은 친구는 집에 다 있는 그 랩이라는 게 어떻게 너네 집에는 없을 수 있느냐는 눈빛이었다. 그냥 기억의 단편 중 하나일 뿐이다. 촌스럽고 순진했던 때였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이곳에 쓰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 중학교 인근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누나들의 영향인지 문과를 선택했고 담임선생님한테 신방과를 가고 싶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자가 되면 글도 잘 쓸 줄 알았었다. 하지만 일학년이 지나고서부터 공부는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책만 읽었다. 그때 책을 많이 읽어서(긍정적으로 해석한 것임), 그 이후의 불행은 조금 비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비행과 불량은 아니었지만, 꼭 부정할 수만도 없었던 때이기도 했다. 겉멋이 잔뜩 들어 책도 어려운 소설책과 철학책들만 골라 읽었는데, 이것이 오늘의 나와 가장 닮은 과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굳게 믿고 있다. 사랑이나 방황, 저항, 그리고 팝(락)에 대한 고민들을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재수에 삼수까지 하게 되었지만, 나이 드신 부모님의 관심에서는 멀어지기만 했던 때이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이란 곳에는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학력고사를 보러 갈 때만 가보고 군대에 가게 되었다. 군대도 얼마나 극적인지. 크리스마스 전에 입영통지를 받고 설날 전날에 입대를 했다.(군 생활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나는 생각한다. 다분히 긍정적이고 계획적이셨다고 믿는 부모님의 방관과 부정적인 나의 방종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고등학교 시기의 많은 철학책이 나의 염세적인 모습을, 헤비메탈이나 프로그레시브락이 나의 우울을 이끌었다고. 도대체 나의 지금은 무엇이 섞여 있는 것일까, 도대체 나의 세포는 내가 어떤 수많은 것들을 우겨넣어서 만들어 졌을까의 답을 쓸 수가 없다.

 

*이 글은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으며 현재 환우회가 끝나고 와서 캔맥주를 하나 놓고(주량의 한계) 쓰는 글임을 밝힌다.(안 밝혀도 아무렇지 않지만)

많은 수정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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