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는 모터가 나오고 전기가 들어오면서부터 만들어졌을 텐데, 어린 시절 기억에는 선풍기가 없다. 그때는 지금만큼 덥지 않았거나 선풍기가 아주 비쌌거나 별로 필요가 없을 수도 있었겠다.
그런 선풍기를 올해는 탁상용에, 가정용 두어 개를 더 샀다. 대단한 사치라고 할 수 있다. 선풍기를 글감으로 올린 이유는 선풍기가 지금 책상위에서 나에게 등을 돌리고 있어서다. 태풍이 온다더니 가을이 왔다. 그래서 선풍기가 등을 돌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곧 떠날 것이다.
살면서 몇 번이고 체질이 바뀌는 것을 살면서 배워가고 있다.
자려고 하면 유독 손과 발이 뜨거워서 선풍기에 발을 내놓거나 남들보다 조금 더 차가워야만 잠을 잘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런 가지가지의 조건이 불면증과 겸치면 거의 잠들기가 쉽지 않다. 손발은 시원해야 하고 침대여야 하고 뭔가 압박을 주는 게 없어야 하며, 뭐 어쨌든지 하는 수면의 조건들이 많아서 잘 잠들지 못한다.
눈도 좋지 않아 지금도 내가 쓴 글들의 모음들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제 탁상 위에서조차 어색하지 않고 흔한 선풍기처럼 일상의 것들이 흔해져 전혀 생소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예전에는 없던 감정들이 사람들 사이에 만연해지고 그것들을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라면, 그 감정은 무엇일까.
코로나19처럼 변형돼 만들어진 감정이 있을까. 책상 놓여진 휴대용 선풍기가 그런 것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