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가방에 물통을 넣어가지고 다녔다.
내 스스로 만든 허약한 심신을 보호하려는 배려였는데, 그 물통을 들고 다니기 귀찮아 가방에 넣었다.
가방에 물통을 넣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는 그 물통의 어딘가에서 물이 흘러 나왔을 때에서야 알 수 있었다.
물통과 인접에 있던 컴퓨터가 마른 목을 축이고 난 후 대수롭지 않게 겉에 묻은 물기를 닦은 후
내 컴퓨터의 얼굴이 사라졌다.
그걸 살려보겠다고 헤어드라이기로 말리다가 키보드마저도 뒤틀렸다.
지금은 꺼진지 켜진지도 모르게 까만 화면이다. 그래도 다행 중 불행으로 메인보드는 그럭저럭 쓸만하다.
그래서 차라리 슬프다.
미련이라도 남지 않게 차라리 그냥 가시지는. 서비스 센터에서 수술비를 물었다가 낙담했다.
화면을 교체하고 메인보드를 바꾸고 키보드를 바꾸면 맥북 하나를 새로 산 가격만큼 견적이 나온다.
"인간의 행복은 그가 필요로 하는 개수에 반비례한다." 소로우의 말을 되새기는 때다.
내가 버릴 수 있는 지속적인 욕심들을 버리고 있다. 책상을 정리하고 마음을 정리하고 시간을 정리하고 컴퓨터의 데이터를 정리하고 정신을 정리하고.
정리하지만, 버리지는 못한다.
아무리 잘된 정리라도 버리는 것만 못하다. 버려야 정리가 된다.
하지만 내가 쓰고 있는 글들은 버리지 못하겠다.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범위를 벗어나는 글이기는 하지만, 나무나 풀이나 돌멩이와 같은 글이다.
잘 생긴 것도 구불어진 것도 이름 없는 것도 다 똑같다.
이 컴퓨터를 현재는 아이패드를 연결해서 화면을 대신하고 있다. 맥북 하나를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하고 하나 더 장만해도 괜찮을 텐데 홈페이지나 에버노트에 글을 쓰면서도 그 글들이 이 컴퓨터 안에 들어 있는 것만 같아 애착이 심해진다.
정말 꼭 내가 글만 쓰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
이 컴퓨터는 꼭 되살려 보려고 이베이를 통해 부품 몇 개를 주문 했다. 잘 되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