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의 어려움은 영어의 어려움과 비슷하다고 했다.
가장 우선하는 이유는 알 것 같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어휘들 때문이다.
그리고 경계가 불문명한 해석이다.
이렇게도 해석되고 저렇게도 해석되는 글들이 많다.
수능 국어에서는 그런 문제가 거의 없지만, 일반 사설 문제집에서는 이것도 답이고 저것도 답인 경우가 많다.
분명히 있다. 자신의 분석이나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경우가 있다. 해설을 봐도 자신이 틀린 것을 인정할 수 없는 경우의 문제라면, 그 문제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역설적 표현으로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라거나 공감각적 표현을 활용하여 화자의 심리를 표현한다, 또는 대비되는 시어를 통해,,,
이런 선택지들을 보면 이것도 있는 듯 보이고 저것도 있는 듯 보인다.
이런 경우 출제자는 표현 중 어느 하나를 인정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정도의 차이로 봤을 수도 있다.
그러니까 가장 적절한 것을 고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바로 국어가 어려운 이유다. 이것도 맞는 설명인 것 같고 저것도 맞는 설명인 것 같고. 혹은 가장 적절한 것은? 이라는 문제에서 선택지를 한 개씩 긋고 나가다보면 다섯 개를 다 틀렸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문제의 문제가 아니다. 다시 수학 문제 풀이 과정으로 돌아가보자. 수학 문제 풀이과정에서 중간에 조금이라도 부호 하나, 숫자 하나라도 틀리면 엉뚱한 결과가 나온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국어도 그렇다. 그런데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과 이해로 그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생각해 보자. 수능 시험은 60만명이 동시에 치르는 문제다. 그런 문제에서 정답의 경계가 흐릿한 문제를 내면 어떻게 될까. 60만명의 가족, 학교, 교육관계자들이 폭동 수준으로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 답이 선명할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주관적 해석과 판단을 배제하는 것이 가장 답에 가까워지는 방법이다.
그러니 수학공식과 같은 훈련이 필요하다. 해석을 빨리하고 정확하게 천천히 하면서 가장 객관적인 결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문제를 풀면서 자신의 판단과 실수에서 오류를 찾아야 한다. 그러한 훈련은 단순히 문제만 열심히 푼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답 정리 대신 미안하게도 틀린 문제 옆에 반성문을 써야 한다. 아, 내가 이렇게 판단했는데, 정답이 아니라고 하는구나. 하는 짧은 멘트가 바로 오답노트가 된다. 해설을 보고 그것을 이해하면서 문제 옆에 메모를 해놓는 것은 시간이 지워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