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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긴 누구나 그렇겠지만, 지금은 잘 보이지도 않는, 저 밤하늘의 별들만큼이나 무수히 많은 충고를 들으면서 컸다. 어릴 땐 "지지!"(땅에 떨어진 건 주워 먹지 마라)나 "에비~"(뜨거운 거 만지면 큰일 난다)처럼 단순하고, 분명하고, 수준 낮은 충고가 많았다. 그러나 내가 자라는 만큼 충고들은 복잡해지고, 애매해지고, 서로 충돌하기도 했다. 

특히 성인이 된 이후에 들은 충고들은 더더욱 그렇다. 어떤 날은 "뭐든 너무 재고 따지지 말고, 일단 열정적으로, 열심히 해 봐"라고 하더니 또 다른 날에는 "애도 아닌데 따질 건 다 따져 봐야지, 그거 하면 경력에 도움은 되나? 야근 많이 한대? 연봉이 얼마라고? 세전이야 세후야?" 같은 소리를 한다. 나처럼 남의 충고를 곧이곧대로 듣고 고개를 주억거리기 일쑤인 나약한 인간에게는 정말이지 어리둥절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열심히,

그러나 그중에서도 우리 모두가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들은 충고는 아마 "열심히!"일 것이다. 위에 말한 지난달과 이번 달에 서로 다른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만나면 반갑다고 열심히 하냐, 헤어질 때 또 만나요 열심히 해라, 한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일관성은 유지하기 때문이다. 

열심(熱心). 뜨거운 마음. 그것은 마치 모든 문을 여는 만능열쇠처럼 어떤 상황, 어떤 화자, 어떤 청자가 엮여도 자연스러운 말로 자리 잡았다. 때로는 '열심히'라는 말만 들어도 자동으로 각오를 다지기도 하겠지만, 이 뜨거운 심장은 모든 사람의 입에서 너무 자주 튀어나와 듣는 이를 지치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잘.

학교를 졸업해 '사회'라는 곳에 진입한 인생의 선배들은, 그전까지 우리가 공유해 온 공동체는 사회라는 개념과 무관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회'에 나가면 '열심히'만으로는 안 된다고 말하기 시작한다. '열심히'가 아니라 '잘' 해야 한다고. 그러나 이 말도 전혀 낯선 것은 아니다. 출근길에 들은 아이와 어머니의 대화에서, 어머니는 유치원 원복을 입고 있는 아이에게 "잘해서 열 명 안에 들어야 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공부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흔한 충고 안에는 은근슬쩍, 열심히 하는 태도뿐 아니라 '잘' 하라는, 즉 좋은 성적을 받으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말하자면 우리는 열정적으로, 열심히, 그리고 '잘' 하기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라왔다. "열심히 일한 당신"에게나 속 시원하게 "떠나라!"고 해 줄 수 있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것은 "당신의 열정" 때문이며, "팔자 좋네"라는 말은 부럽다는 뜻이 아니라 한심하다는 비아냥거림에 가깝다.

한 편으로 보자면 이것이야말로 피로사회가 행하는 "긍정성의 폭력"이며, 다른 한 편으로 보자면 우리를 키워온 "성장에 대한 신화 혹은 강요"이다. 

피로사회, 긍정적으로 살았더니 우울해지는 마법.

피로사회란 다른 사람이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사회라기보다, 내가 자기 자신을 피로하게 만들도록 격려하는 사회다. 재독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한병철은 저서 『피로사회』에서 긍정적이고 자발적이며 열정적인 태도로 열심히 일한 결과, 결국 타인이 아니라 자기가 자신을 착취하게 되는 이 사회를 피로사회, 성과사회, 히스테리컬한 활동사회 등으로 부른다. 

이 사회의 괴이한 점은, '노력한 만큼 성과를 얻는다'는 믿음 하에 우리가 우리 삶을 자발적으로, 긍정적으로, 열정적으로 살아갈수록 사회에는 무기력하고, 회의적이고, 자학적인 한탄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한병철은 따라서 우울증 등의 신경성 질환들을 피로사회 혹은 피로시대를 대표하는 질병으로 본다. 우울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자들에게, 삶을 애초에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자들에게 찾아오는 병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다는 의식은 파괴적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진다. "…… (『피로사회』, p.28) 

열정, 성장을 요구해서 성장을 가로막는 아이러니.

인문학자인 엄기호는 자신의 책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에서, '자라지 않는 요즘 애들(이라지만 법적으로 성인인 20대 청년들)'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되는 시선이 '성장에 대한 강요'인 동시에 역설적으로 이들의 성장을 주춤거리게 하는 족쇄가 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엄기호는 우리 사회가 20대를 기성세대의 언어로 '포획'해서 '한심하다'고 매도한다고 말한다. 그 포획의 핵심에는 누구나 당연히 성장해야 하며, 이 '성장'의 의미는 스스로 자립해서 자신의 삶을 꾸리고, 공부하고, 일하고, 훗날을 위해 지금 원하는 것 정도는 참아내며 인생을 설계하는 어른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의 20대가 한심한 까닭은 아이처럼 의존적이고, 스스로 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이 비난은 우파와 좌파(든 보수와 진보든)를 가리지 않는다. 전자는 청년들이 편하고 돈 많이 주는 곳만 찾는 철딱서니들이라고 생각하고, 후자는 청년들이 일신의 안정만 생각하지 사회적 책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이기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성장하라!'는 요구는 다시 착취라는 결과를 낳는다. 내가 한 일에 대해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해도,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참아야 하거나 '네가 좋아서 혹은 선택해서 하는 일이니' 참아야 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에 그 정도는 희생할 수 있어야 어른'이므로 참아야 한다. 

다른 방식으로 어른이 될 수는 없을까?

종합해 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열정적이고 자기 착취적인 피로사회에서 자학적이고 한심한 어른으로 자라났다. 아니, 아직 '제대로 된' 어른으로 자라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다른 방식으로 어른이 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앞서 언급한 두 권의 책에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실마리를 주고 있지만, 그것이 정답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다만 계속해서 질문하고 고민할 따름이다. 

참고 서적 : 한병철, 『피로사회』, 문학과 지성사, 2012. 

엄기호,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푸른숲, 2010. 
Written by Julie (eyeandbeing@artn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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