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이었다.
건물 사이로 비쳤다가 사라지고 또 멀어지는 노을은 사진을 찍고 싶을 만큼 예뻤다. 살면서 붉은 노을을 볼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들었다. 노을만 그럴까. 아름답고 짧은 시간이었다. 아마 라디오에서는 배철수의 시시껄렁한 농담이 나왔을 것이다.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도 좋은 시간이었다.
과선교라는 단어는 어렵다. 처음 이 단어를 접한 것은 람덕과선교라는 표지판에서였다. 한동안 그 길을 다녔지만 그 뜻을 알지는 못했다. 람덕과선교.
우리집 옆에는 광암과선교가 있다. 배철수의 목소리로 나오는 농담은 색깔이 있었다.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지만 얼굴이 가볍게 펴지는 정도의 수준이다.
어느 한 장면,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오후 6시 33분에서 34분 사이. 철수는 오늘이라는 코너의 시그널, 어쿠스틱 알케미의 발라드 포 카이가 흘러나올 때의 어느 순간.
과선교 정점에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그 길과 직각으로 교차하는 다른 길 - 철길과는 평행선을 이루는 길이 길게 뻗어보인다. 주변 하늘은 어두워지면서 회색빛이고 건물들은 점점 색을 빼앗기는데 그 길이 너무나도 맑게 보이는 것이었다. 저 멀리 길의 소실점이 입체적으로 뚜렷하게 보였고 씻은 듯이라는 표현이 알맞게끔 - 그 길은 공구나 기계를 다루는 상점이 가득해서 예쁘다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너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찬란은 순간이고 어느 순간은 찬란이다.
내 삶이 그렇다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 순간은 찬란했다고, 설사 스스로 인지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누군가가 그런 찬란의 순간을 내 삶에서 보았다고 기억해주면 좋겠다. 아니다. 그것보다는 내가 내 삶에서 그런 순간을 느끼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