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기
어느 날 길동님은 전자동 율도국 자판기에서
판결문을 넣고 나를 뽑아 이곳에 유배시켰다
그것은 이상에 대한 간음의 뜨거운 죄값이었다
처음에는 길을 찾아 돌아가지 않을 길을 걸었지만
그 길은 곧 고장나고
사람들의 전파가 길을 대신하려다 망한 사람이 자꾸 늘어났다
이 곳의 풍경은
사랑을 사랑이라 부르지 못하고
이별을 이별이라 부르지 못하는,
시들어가는 자유를 고사시켜
결국 대기권 안에 가두어 놓아 모두들 서로의 규칙을 엄수하게 만들었다
가끔은 사연을 말아 담배를 피웠고
그 사연의 공초를 나에게 담기도 했다
죄의 시간은 길고 죄값의 시간은 별이 반짝이는 것처럼 짧아
사라지지 않는 인간들이 자꾸 생산되는 곳
따뜻함이 사라지고 맞아도 더는 울지 않는 자명종처럼
소모를 다한 나는 쓰레기통으로의 비행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