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는 그날
죽었어야 했다.
푹 절여진 걸음걸이
비릿한 눈동자에도
끈적이는 장판의 질척임과
덜컹이는 부엌문의 덜컹임에도
단호함으로 굴하지 않았으니
죽었어야 했다
몽둥이 같은 식칼과
사흘은 탈 살점
어린 아들의 무능력과
믿음을 남기지 않을 기도 때문에
죽지 못했다
그 해 여름은 멀어져 갔지만
다가올 여름이 있기에
가을과 겨울, 다가올 봄이 있기에
새로이 열매 맺는 열망으로
죽음을 원했고 죽기를 바랐다
나의 아들아
죽음으로의 우리 여정에
내가 앞장 설 테니
눈물을 흘리어라
원망으로 절망을 가리어라
새로이 흘러 넘치는 열망으로
부디 죽기를 바라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