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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선물에 대한 이야기인지, 어느 분에 대한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다.

이 이야기는 30년 전으로 돌아간다.

어느 따듯한 봄날, 정말 재미없게, 학교를 왜 다니는지 이유도 모른 채,

교실에 앉아있던 학생이 들은 이야기이다.

그 선생님은 엄하기로 유명한 수학 선생님이셨다.

수업 중에는 단 한마디도 농담을 하지 않았고 문제를 풀게 해서 틀린 학생에게 무섭게 매질을 하셨다.

늘 긴장되면서 재미 없는 수업시간이었다.

그런 선생님이 어느 봄날, 수업에 들어오시자 마자 아무 말씀도 없이 창문을 등지고

오랫동안 서 계셨다.

그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애들은 꼼짝없이 앉아 있었다.

마치 시간이 끝없이 길게 늘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공간의 모든 사물이 숨을 멈추었다.

그 끊어질 듯한 시간을 다시 이은 것은 선생님의 깜짝스런 이야기 하나였다.


그 분이 초임 때, 다들 가난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때였다.

그 선생님이 어느 시골에 있는 학교에 부임을 하였는데, 선생님의 반에는 얼굴이 일그러지고 곱사등이(척추장애인) 여학생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

얼굴이나 모양새가 가까이 하기 어려울 정도였고, 젊은 총각선생님의 입장에서는 말 한마디 꺼내기 추한 모습이었다.

학기가 시작되고 가정방문 철이 시작되었는데,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 입구 산비탈 초가집에 살고 있던 그 소녀의 집은 죽어도 가기 싫었다. 그래서 궁리해낸 방법이 학교에서 가장 먼 마을부터 돌기로 한 것이다. 그러다가 그 소녀의 집을 잊어버리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렇게 가정방문이 시작되고 시간이 흐르고 점점 그 소녀의 마을 차례가 가까워졌다. 그런데도 정말 그 집만은 가기 싫어, 그 마을의 반대편 입구로 들어가기로 했다. 얕은 산을 옆에 끼고 왼쪽으로 들어갔다가 오른쪽으로 돌아나오면 되는 길이 있었다.

그 선생님은 기분에 그랬는지, 마지막 날이어서 그랬는지 주는 집마다 술을 거절하지 않고 마시기 시작했다. 어떤 집에서는 닭을 잡기도 했다.그렇게 그 마을을 한 바퀴 돌다 보니, 술기운은 머리까지 올라왔고 그 소녀의 기억은 다 지워져 있었다.

자전거를 끌고 비틀비틀 그 동네 어귀를 돌아 나오는데, 저 멀리 희꺼먼 물체가 왔다갔다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빛 하나 없는 밤에 귀신인가 싶어 점점 술이 깨기 시작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점점 그 물체에 다가섰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바로 그 곱사등이 소녀였다.

놀라기도 하고 흉칙하기도 해서, 멍하니 서 있던 그 선생님에게 그 소녀가 조심스레 다가오더니 손에 무언가를 하나 쥐어주고 수줍어 하면서 집에 뛰어들어갔다.

정신이 없는 중에도 손에 있는 것을 살펴보니 계란 하나였다. 그 시절에는 계란 하나도 귀한 때였으니까.

계란을 얼마나 오랫동안 만지작거렸는지, 얼마나 오래 거기 서있었는지 계란에는 뜨뜻한 온기가 남아 있었고 껍질은 닳아 맨들해져 있었다.

그 계란을 들고 방으로 돌아와서 그 선생님은 얼마 동안 울기 시작했다.

자신이 선생이란 직업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얼마 부끄러웠는지, 그 생각을 하면서 짐을 싸기까지 했다. 그렇게 거의 밤을 새웠다며. 

쭈글쭈글한 눈주름에 물기가 고였다고 한다.


그 자리의 아이들은, 등을 따끔거리게 만드는 봄 햇볕에도, 모두 어느 수학 시간보다 집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아이 중 하나는 그 이야기를 자신의 중학교 시절을 대표하는 기억으로 남겨 두었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중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친구나 어떤 사건이나 어느 선생님이 떠오르는 게 아니고 이 이야기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봄이 되면 창가로 등 따갑게 만드는 햇볕이 들어오면 다시 몇 십년의 기억에 싹이 트고 자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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