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3월 15일 전남 고흥 태생. 순천사범학교를 거쳐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였다.
1975년 『문학사상』에 시 「산문(山門)에 기대어」가 신인상으로 당선되어 문단에 등장한 이후, 시집 『산문에 기대어』(1980), 『아도(啞陶)』(1984), 『우리들의 땅』(1988), 『별밤지기』(1992), 『초록의 감옥』(1999), 『언 땅에 조선매화 한 그루 심고』(2005) 등을 간행하였다.
그의 시는 재래의 무력하고 자조적인 한의 정서가 아니라 한 속에 내재한 은근하고 무게있는 남성적인 힘을 강조하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한 남도의 토속어가 가진 특유의 맛과 멋을 무리없이 살리는 데 성공하였으며, 역사 의식을 매개로 한 민족 재생의 의지를 담은 작품들도 많이 발표했다.(일부 편집) [네이버 지식백과] 송수권 [宋秀權]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2.25)
까치밥
- 송수권
고향이 고향인 줄도 모르면서
긴 장대 휘둘러 까치밥 따는
서울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남도의 빈 겨울 하늘만 남으면
우리 마음 얼마나 허전할까
살아온 이 세상 어느 물굽이
소용돌이치고 휩쓸려 배 주릴 때도
공중을 오가는 날짐승에게 길을 내어주는
그것은 따뜻한 등불이었으니
철없는 조카아이들이여
그 까치밥 따지 말라
사랑방 말쿠지에 짚신 몇 죽 걸어놓고
할아버지는 무덤 속을 걸어가시지 않았느냐
그 짚신 더러는 외로운 길손의 길보시가 되고
한밤중 동네 개 컹컹 짖어 그 짚신 짊어지고
아버지는 다시 새벽 두만강 국경을 넘기도 하였느니
아이들아, 수많은 기다림의 세월
그러니 서러워하지도 말아라
눈 속에 익은 까치밥 몇 개가
겨울 하늘에 떠서
아직도 너희들이 가야 할 머나먼 길
이렇게 등 따숩게 비춰주고 있지 않으냐.
송수권에 대한 주목은 지리산 뻐꾹새라는 작품이 수능에 나오면서부터다. 부끄럽지만 사실 그 이전에 시인 송수권에 대한 정보는 나도 잘 알지 못했다. 송수권은 박재삼과 비길 만하다. 은근하게 풍겨 나오는 토속적인 느낌과 그 안에 들어 있는 한,이라는 정서, 그리고 시적 표현들이 그렇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그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까치밥(가을에 모두 수확하지 않고 새들이 겨울철 먹을 수 있도록 남겨둔 열매)이란 제목은 배려와 인심,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버티게 만든 힘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화자는 고향이 없는(고향의 의미가 없는, 전통적인 고향의 의미를 모르는) 조카 애들이 긴 장대를 가지고 높이 매달려 있는 감나무 끝의 홍시를 따려는 모습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말투가 강하다. -말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말한다. 가난했던 겨울, 그 까치밥(배려, 인심)마저 하늘에 매달려 있지 않으면 우리는 얼마나 허전하게 살았겠는가. 힘들게 살아온 우리 인생, 가난했을 때도 새들에게는 그것이 힘이고 (마치 빨간 등대처럼) 길이었을테니까, 철없는 조카아이들아, 따지 마라.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고는 더 먼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로. 할아버지는 끝까지 남(길손에게 보시:베풂)을 배려하기 위해 짚신 몇 켤레 만들어 놓으시고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험한 인생 사셨으니까, 조카아이들아 그 까치밥 따지 마라, 이렇게 말한다. 하얀 눈 속에 빨간 까치밥이 하늘에 떠 있으면서, 이제 조카아이 너네들이 가야 할 인생을 이전 세대들이 배려하고 베풀면서 힘이 되었던 것처럼 세상 따듯하게 해주지 않겠느냐, 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