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용은 1930년대에 이미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당시의 시단(詩壇)을 대표했던 시인이었다. 김기림과 같은 사람은 “한국의 현대시가 지용에서 비롯되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의 시는 크게 세 시기로 특징이 구분되어 나타난다. 첫 번째 시기는 1926년부터 1933년까지의 기간으로, 이 시기에 그는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이미지를 중시하면서도 향토적 정서를 형상화한 순수 서정시의 가능성을 개척하였다. 특히 그는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다듬은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여 다른 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 ‘향수’(조선지광, 1927)가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두 번째 시기는 1933년부터 1935년까지이다. 이 시기에 그는 가톨릭 신앙에 바탕을 둔 여러 편의 종교적인 시들을 발표하였다. ‘그의 반’, ‘불사조’, ‘다른 하늘’ 등이 이 시기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세 번째 시기는 1936년 이후로, 이 시기에 그는 전통적인 미학에 바탕을 둔 자연시들을 발표하였다. ‘장수산’, ‘백록담’ 등이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들로, 자연을 정교한 언어로 표현하여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해서 산수시(山水詩)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지용은 참신한 이미지와 절제된 시어로 한국 현대시의 성숙에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한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분단 이후 오랜 기간 동안 그의 시들은 다른 납북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다 수많은 문인들의 청원으로 1988년 3월 해금(解禁)되어 대중에게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고, 1989년에는 ‘지용 시문학상’이 제정되어 박두진이 1회 수상자로 선정된 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일부 편집) [네이버 지식백과] 정지용 [鄭芝溶] (두산백과)
춘설(春雪)
-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옹송그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워라.
미나리 파릇한 새 순 돋고
옴짓 아니기던 고기 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
* 주황색 표시는 의미가 깊거나 표현법이 들어 있는 부분.
국어를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정지용을 조금은 과소평가 하는 듯하다. 정지용은 여러 면에서 일제강점기를 관통할 수 있는 시인 중 한 사람이다. 특히 이미지와 향토적 정서를 잘 버무리는 모양새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백석과도 닮아 있다. 정지용이 사용하는 언어들은 감각적(오감을 이용한 것 이상의 의미)이다.
이런 점은 정지용의 대표작 중 하나인 유리창이라는 시를 보면 더 분명해진다.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이런 구절은 언제 봐도 놀랍기까지 하다. 그저 시 참 잘 썼다, 라는 소리를 중얼거리게 된다.
이 작품 춘설은 봄눈이다. 반갑기도 하고 조금 의아스럽기도 한 것이 봄눈일 것이다. 시의 내용을 풀이하면,
문열자 깜짝, 먼 산(시각)이 이마와 마주치는 높이에서 차갑게(촉각) 느껴진다.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도 지나 음력 초하루 아침에 서늘하게 빛나는 눈 덮인 산봉우리와 이마를 마주한다. 얼음은 녹기 시작하고 봄바람은 불어, 나부끼는 흰(시각) 고름이 향기롭다.(후각) 웅크리다가 살아난 모양에, 아, 이 봄이 꿈 같아서 서럽기까지 한다. 미나리는 새 순이 돋아나고 움직 않던 고기들도 입을 오물거리고, 아직 꽃 피기 전 봄눈에 (봄이 왔으니까)솜옷 벗고 다시 추운 겨울이고 싶다.(겨울-시간의 흐름에 대한 아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