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께서 책을 보내주셨다.
봄꽃처럼 피어나는 슬픔에 빠졌다.
언젠가 이곳을 열면서 글을 쓰지 않는 날은 없을 거라고 글을 남겼던 적이 있다. 그 말대로라면 나는 몇 번이고 사라졌어야 맞다. 글을 쓴다는 것을 글자를 쓰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의지에 따라 글을 쓰는 것이 살면서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 변명을 꺼내어 본다.
키스 자렛의 음악을 들으며 늘어지는 봄햇살을 따라 아침 출근을 느리게 운전해서 아주 느리게 하고 싶었다. 선생님의 자서전인 산돌 키우기라는 책을 읽으면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글을 쓰고 싶어했던 나는 날마다 글을 쓰고 있지만, 정작 아무 글도 남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낀다. 그래서 그 슬픔은 너무 크거나 깊지는 않지만 아주 오래도록 남아서 나를 괴롭게 하고 있다.
어떤 일인가에 빠져 사는 것이 나쁘지 않을 테다. 사람들은 그렇게 살고 있다. 가끔 어떤 일에도 젖어들지 못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에 골몰하면 이런 봄날 우울해지기 십상이다. 5월의 봄날 수국이 가득 피어있는 제주도의 어느 시골마을 담벽을 생각하고 거기서 햇볕을 쬐고 아무 생각없이 기울어져 있는 나를 생각하고 책을 생각하고 또 무엇인가를 써야하다는 강박에 빠져들고 무엇으로 살고 있는지를 생각하고 어쩌려고 저 봄꽃들은 가득가득 피어나는지를 생각하면서 어쩔 수 없는 출근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