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명절이 일정한 절기의 구분과 세레모니, 음식을 통한 영양보충이나 가족의 유대감을 키우는 등의 의미였다면, 지금은 흩어진 가족의 모임이거나 현대사회의 다양한 삶에 대한 재해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천만 명 이상이 움직인다고 하는데,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동조현상이거나, 혹은 한 해동안의 부족함을 이 일로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의 간절함이 담겨있다.
그런 명절 중에서 가장 큰(?) 설날이다. 추석과 설날에만 이런 일이 반복되지만, 아마 머지 않아 어느 한 날은 조금 그 의미가 퇴색되지 않을까 싶다.
나이가 들면서 명절에 대한 씁쓸함이 이런 저런 이유로 자꾸 커간다. 흔히 보는 텔레비전에서는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거나, 한 해를 시작하는 의미를 부여하거나, 휴일로써의 오락을 보여주거나 하지만, 나에게는 그 어떤 것으로도 이 설 명절이 그렇게 잘 맞지 않는다. 늙은 부모님과 소원해진 형제들, 연락없는 친구들, 인사치레로 왔다 갔다 해야 하는 번거로움들, 피곤한 날들이다.
어떤 의미해서 한 해가 다시 시작될 때면, 현재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보통이다. 아주 오래 전 삶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조차 없을 때, 그냥 살아있음이었을 때, 늘 빚을 낸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그 친구들과 함께 했던 노래들이 있다. 내 삶에서 어쩌면 명절은 어느 뚜렷한 날이 아니라, 기억 속의 그때가 아닌가 싶다.
아주 개인적인 내 삶의 명절, 해마다 챙겨야 하는 명절은 아니지만, 그 명절을 다시 챙겨보고 싶다. 어느 특정한 날이 아니지만, 그 이삼 년 동안의 기억들을 다시 꺼내보고 싶다. 하고 싶은 대로 했던 그 때,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었다. 지금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만, 하고 싶은 것은 거의 할 수 없다. 그래서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써보려고 한다.
박학기나 들국화, 무한궤도와 공일오비, 김광석에 대해서. 그리고 이 노래들을 알려주거나 같이 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잠깐씩 써보고 싶다. 그게 그 친구들과 빚진 그 노래들에게 명절을 찾아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