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책상 주변에 화분이 있다. 누군가 건네준 화분이다. 난 화분을 잘 키우는 편이다. 잘 키운다는 말에 중의성이 있다. 화분에는 미니야자가 자라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자라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어린 시절에는 화분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없었다. 주변에 온통 흙이었니까 화분이 필요할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아파트에 살면서 도시에 살면서 흙을 밟을 일이 거의 사라지면서 곁에 흙을 두고 싶었던 모양이다. 식물보다는 어쩌면 목적이 흙일 수 있겠다 싶었다.
화분은 언젠가는 생명을 다한다. 그것이 마치 정해진 수순같다. 꽃이 시들면 죽는 화분도 있도 잘 자라다가도 분갈이가 늦어서 죽기도 하고 한참 관심에서 벗어나면 시들어 버리기도 한다.
화분을 잘 키우는 사람은 우울증이 없다고 했는지 우울증이 있으면 화분을 키우는 게 좋다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서에 좋은 것만은 분명하다. 살아있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아주 잠깐일 수 있지만 스스로의 삶을 견줘 보기도 할 테니까.
화분을 더 많이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한두 개의 화분을 정성들여 잘 키우고 싶다. 노래를 듣거나 햇빛을 받거나 물을 마시거나 흐븟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모두 같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