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직전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 왔다. 내 옆자리에 걸려 온 전화였지만 대신 전화를 받았고 다짜고짜 누구냐고 묻는 소리를 들었다. 신분을 밝혔지만 화가 잔뜩 난 그 여자에게는 들리지 않았던 모양이다.
상급자를 찾았지만 잠깐 부재중이라고 했더니 그럼 얘기할 테니 잘 들으라고 하면서 일정 변경에 대해 온갖 불만을 욕만 섞지 않고 모두 쏟아냈다.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를 써야만 했고 또 그여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차분한 목소리를 내야 했다. 나와의 대화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지 자신의 신분을 다 밝힐 테니 상급자의 전화번호를 대라고 말했다. 응대에 한계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전화번호를 말하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먼저 전화를 해서 상황을 알리려고 했지만 이미 통화 중이었고 가방을 맨 채 그를 찾아가야 했다. 통화가 계속 되는 것을 옆에서 들으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 - 요즘 나의 모습이다. - 자괴감을 느꼈다. 그 무례한 여자와의 통화가 끝나고 둘은 담배를 태웠다.
그는 또다른 상황에 대해서도 힘듦을 말했다. 미안했다.
그를 상급자답게 대하지 못했음에 혹은 적절하게 처리허자 못했음에 혹은 나의 무능함이나 부실함에. 어떤 것이든 상관 없다.
돌아 오는 길에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공황장애가 올 것 같아 잠시 운전을 멈출까 싶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면 그냥 확신이라도 있을 텐데 그 막연함이 오히려 모든 감정을 토해내도록 만들었다. 어쩌면 겨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겨우겨우. 오늘은 그런 날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잠 재우지 못하는, 처방 받은 약봉지처럼 구겨진 날로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