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지나기 전에 글을 쓰려고 했지만
지금은 0시 19분.
누군가를 지나치게 미워하거나 좋아하면 1:99의 감정이 쏠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아주 작은 차이일 수도 있다. 감정의 주체는 그것을 다 담고 있으니 이런 사실을 인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
콩쥐와 팥쥐를 대하는 계모가 아니라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가급적 자신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꺼리게 된다. 누군가에게 49의 감정을 나눈다면 다른 누군가와는 51의 감정을 나누게 된다. 다수 대 다수이든지 일 대 다수이거나 다수 대 일이어도 마찬가지다.
감정도 승자독식으로 느껴진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그렇게 가정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오늘은 비가 내렸다. 아직도 비를 좋아한다. 비가 내리는 풍경을 보는 시점은 언제나 나를 중심으로 한다. 그런 나를 보는 시점은 공간적 상상과 이미지의 조합이다.
나이도 하나의 공간이다. 집안에서 집의 외형을 볼 수 없듯이 안타깝게도 나이 속의 나는 나이의 외형을 볼 수 없다. 나는 어디쯤에 서 있는가 갑자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