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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부분의 줄거리] 중국 옹주 땅에 사는 쥐 서대주는 당나라 태종을 도운 공으로 벼슬을 얻어, 온 종족을 초청하는 잔치를 베푼다. 스스로를 백면서생의 선비라고 일컫는 하도산의 다람쥐는 천성이 게을러 빈궁하게 살던 중 서대주의 잔치에 찾아가 사정을 호소하고 식량을 받는다. 겨울에 다시 굶는 신세가 된 다람쥐는 서대주를 찾아가 구걸했으나 거절당한다. 이에 원한을 품은 다람쥐는 아내 다람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곤륜산의 백호산군에게 서대주가 자신의 식량을 도적질했다고 소송하고, 백호산군은 그의 말을 들어 보고자 서대주를 잡아 오게 한다.

 

네 어찌 이같이 무식 무례한다? 글에 일렀으되 수중청룡은 만어왕(萬魚王)이요 산상백호(山上白虎)는 백수장(百獸長)이라하였으니 나는 백 짐승의 장수어늘, 네가 내 면전에 이르러 길게 읍하고 절을 아니 함은 어쩜이오?” / 서대주 안색을 불변하고 눈을 깜짝이며 소리를 가다듬어 대답하여 왈,

산군(山君)의 이르시는 말씀을 깨닫지 못하온지라, 대개 산군은 천산만악과 태산오악을 살피며 돌아다니시어 짐승의 선악을 살피시는 직임(職任)이요, 의신(矣身)1)은 멀리 바다 한구석에 있고 아는 것이 적어서 거친 뫼와 깊은 골에 웅거하여 다만 산군 절제(節制)를 받을 따름이로되, 만리강산과 사해팔황(四海八荒) 안에 허다 만물은 당천자(唐天子)의 신민 아닌 것이 없는지라, 이제 의신 몸 위에는 당천자께서 나리신 교지를 머물렀는고로 기리 읍만 하고 절하지 아니함은 실로 당천자께 욕되지 않도록 함이요 산군의 위엄을 범함이 아니오니, 원컨대 산군은 살피소서.”

백호산군이 양구(良久)2)에 왈,

진실로 선재(善哉). 이는 충의의 말이라. 그러나 들으니 요사이 다람쥐로 더불어 무삼 결원(結怨)이 있어 남의 겨우살이 양식(糧食)을 도적함은 어찐 연고이뇨?”

하고 인하여 다람쥐를 불러들여 서대주로 대송(對訟)할새, 다람쥐의 소지(所志)를 내어 서대주에게 읽혀 들리며 분부 왈,

서대주는 들으라. 다람쥐 소지 원정(原情)이 이와 같으니 사실 이허(事實裏許)가 과연 이러하뇨? 조금도 감추거나 숨기지 말고 이실직고하라.” / 서대주 이 말을 듣고 전상을 우러러 소리를 높이며 왈,

산군의 명령을 듣고 어색하온 말로 감히 여쭈기 어려운지라, 바라건대 잠깐 머무르시면 한 장 소지를 베풀어 의신의 뜻을 아뢰겠나이다.”

산군이 이에 허락하니 서대주 종이와 붓을 취하여 잠시 동안에 일장 소지를 지어 올리거늘, 산군이 그 소 지를 받아 보니 가라사대,

(중략)

옛날 한 태조는 진나라를 멸하고, 함양에 들어가 부로(父老)3)로 더불어 삼장법(三章法)을 언약할 제 살인자는 죽이고 상인자(傷人者)와 도적은 죄에 다 다스리기로 국법을 밝혔사오니, 원컨대 산군은 진상을 명찰하신 후에 만일에 의신이 도적에 나타나는 형상이 분명하올진대 쾌히 의신을 명백하게 그 죄명을 집어내어 나중에 다른 짐승으로 하여금 징계하시고, 산군도 덕화를 멀리 베풀지 못하사 교화 널리 흐르지 못함으로 이런 송사가 생기는 것이오니 스스로 탄식만 하옵시고 의신 등의 쟁송함을 그르다 마옵소서.”

백호산군이 서대주의 소지를 본 후 말이 없더니, 이윽고 제사(題辭)4)를 부르매 그 제사에 가로되,

 

예로부터 일렀으되 재하자(在下者)는 유구무언이어늘, 당돌히 위를 범하여 나의 덕화 없음을 꾸짖으니 죄당만사라. 그러나 임금이 어질어야 신하가 곧다 하였나니, 위나라 임좌는 그 임금 무후의 그름을 말하였고 한나라 신하 주운은 그 임금 한제의 그름을 말하였더니, 너는 이제 나의 무덕함을 말하니 너는 진실로 임좌와 주운이 되고 나는 진실로 무후한제 되리니, 너같이 곧은 자 어찌 다람쥐의 양식을 도적하리오. 어불성설이니 다람쥐는 엄형정배(嚴刑定配)5)하고 서대주는 즉시 풀어 주라.”

- 작자 미상, <서동지전(鼠同知傳)>

[어휘 풀이] 1) 의신: 자신을 낮추어 이르는 말. 2) 양구: 시간이 꽤 오래 지남. 3) 부로: 동네에서 나이가 많은 남자 어른을 높여 이르는 말. 4) 제사: 관부에서 백성이 제출한 소장에 쓰는 판결이나 지령. 5) 엄형정배: 엄하게 형벌을 다스려 귀양을 보냄.

 

 

<보기>를 바탕으로 []를 감상한 것으로 적절한 것은?  

      

송사 소설은 가족 간이나 향촌 사회 내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법에 의해 어떤 문제의 시비를 가리는 과정을 다루는 소설이다. 송사 소설에서는 절도나 폭력 등의 범죄, 협박, 무고1) 등의 가해 유형을 보인다. 다각도로 심문이 이루어지는 송사의 과정에서는 뇌물 수수의 행태가 나타나기도 하며, 작품에 따라 진상 규명 방식과 그 결과도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송사 소설은 과제 부여과제 해결의 구조로 전개되며 과제 해결 주체는 판관이 대부분이지만 원조자나 제삼자가 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휘 풀이] 1) 무고(誣告): 사실이 아닌 일을 거짓으로 꾸미어 해당 기관에 고소하거나 고발하는 일.

 

서대주와 최근에 결원이 생긴 다람쥐가 소송을 제기했다는 점으로 보아, 향촌 내의 세력 다툼으로 인한 원한 관계가 주요 갈등 구조임을 알 수 있군.

서대주가 양식을 도적했다는 이유로 잡혀 왔으나 실제로는 다람쥐가 거짓된 내용으로 소송한 점으로 보아, 가해 유형은 표면적으로 절도이지만 실제로는 무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군.

백호산군이 다람쥐가 미리 작성한 소지를 바탕으로 진상을 규명하려 했다는 점으로 보아, 다람쥐와 백호산군 사이의 부정한 결탁이 송사 과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군.

백호산군이 다람쥐를 엄형정배했다는 점으로 보아, 진상을 규명한 결과 공정하지 못한 판결로 억울하게 핍박받는 자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군.

서대주가 제출한 소지로 부여된 과제가 다람쥐가 작성한 소지에 의해 해결된다는 점으로 보아, 과제 해결의 주체인 서대주가 판관에 대해서 품고 있는 불신을 엿볼 수 있군.

 

 

작자 미상, <서동지전>

해제 : 이 작품은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담고 있는 우화 소설로서 제시문은 서대주다람쥐의 송사가 전개되는 과정의 일부이다. 이 작품은 간악한 다람쥐를 용서하는 서대주의 아량 있는 태도, 다람쥐와 그 아내의 대립을 통해 드러나는 가부장적 권위의 모순, 다람쥐의 빈곤한 처지와 관련된 경제적 갈등 등, 조선 후기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동물을 의인화하여 드러내고 있다. 이를 통해 표면적으로는 권선징악을 주제로 제시하여 교훈을 전달하면서 이면적으로는 여성의 자기주장을 드러내어 봉건적 사고방식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이 작품은 사건 전개 과정에서 다양한 인물의 행동 양상을 통해 당시의 경제적·사회적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주제 : 배은망덕한 행동에 대한 비판과 아량 있는 태도의 권장

전체 줄거리 : 중국 옹주 땅 토굴에 사는 서대주는 공로를 세워 벼슬을 받고 잔치를 베풀던 중, 경제적으로 빈곤한 다람쥐가 와서 딱 한 사정을 호소하자 도움을 준다. 다람쥐는 그 후 식량이 떨어지자 또다시 서대주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서대주가 종족의 형편을 들어 도움 주기를 거절하자 원한을 품은 다람쥐는 백호산군에게 거짓으로 소송을 제기한다. 그 과정에서 만류하던 계집 다람쥐는 남편의 가부장적 태도에 분노하여 집을 나간다. 소송장을 받은 백호산군은 오소리와 너구리를 시켜 서대주를 잡아 오게 한다. 서대주는 백호산군 앞에서 자신에게 죄가 없음을 밝히는 소지를 작성하여 백호산군을 설득한다. 백호산군은 이러한 서대주의 태도와 서 대주가 작성한 소지를 통해 다람쥐가 그를 허위로 고발했다고 판단하고, 다람쥐를 귀양 보내고자 한다. 서대주는 이에 관용을 베풀어 다람쥐를 풀어 줄 것을 간청하고 백호산군이 서대주의 아량에 감동하여 다람쥐를 석방한다. 다람쥐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서대주에게 감사를 표한 후 돌아가고, 많은 이들이 서대주의 덕행을 칭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