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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를 처음 마셨을 때

 

국민학교, 아마 국민학교 2학년이었을 것이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서울에서 일하던 누나가 내려왔다. 누나는 어느 산업체고등학교를 다니며 힘들게 일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눈물나는 삶이었을 텐데 어리고 속없는 동생은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국민학교 2학년인 내가 그 힘든 삶을 조금이라도 알아 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철없는 나는 서울에서 내려온 누나가 무엇을 사서 내려오는지, 사 줄것인지에 대해서만 설레고 관심이 있었다. 사실 관심이 있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시골에서 가난에 익숙했던 나에게 서울에서 내려온 누나는 그 자체로 신비한 나라의 요정이었다. 그녀가 가지고 온 선물이나 돈만 그랬다. 두고두고 그 작지만 악랄한 처절함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수십 년이 지났으니, 모든 것이 변한 것은 당연하겠지만 내가 콜라를 처음 마셨던 그 장소는 이미 사라져 버린지 오래다. 누나는 나와 막내누나를 데리고 터미널 근처에 있는 중국집에 갔다. 어떤 선물을 사줬는지 아니면 중국집에서 다른 맛있는 요리를 사줬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없다. 

터미널 안에 있던 - 혹은 옆에 있던 중국집이었다. 거기서 나는 우동을 먹었던 듯싶다. 왜 우동이었는지도 기억에 없다. 중국집 우동이라고 해서 내가 그 전에 먹어보았을 리가 없었을 텐데. 우동을 먹다가 당연하게도 음료수가 따라 나왔고 - 누나가 주문했을 수도 있다 - 하얀줄이 그어진 그리고 화려하게 영어로 쓰인 코라콜라, 그 병을 나는 몰라봤다. 그 마법같은 까만 물을 처음 대면하는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었고 그래서 조금 무례하기도 했었다.

지금에서야 어린 아이들에게 탄산이, 그리고 카페인이 몸에 좋지 않다고 탄산 음료를 주지 않지만, 그 때는 단지 그것이 귀해서 먹지를 못했을 뿐이다. 누나는 두껍고 하얗고 무거운 사기잔에 콜라를 따라 주었다. 그때 먹었던 우동도 너무 달고 맛있었는데, 콜라라는 마법의 물이라니.

처음 들이킨 콜라는 내 모든 구강 구조를 아프게 했다. 그렇지만 그 아픔은 금방 사라졌다. 뭔가 묘한 고통이었다. 아픈 것처럼 느껴졌지만 시원했고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목구멍에서 배 아래쪽까지 콜라가 흘러 내려가는 길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뭐랄까. 혓바닥으로 이를 문지르면 뽀드득거렸다. 그 이상한 느낌은 여러가지였다. 아프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하고.

더 황당한 일은 그 뒤에 일어났다. 코를 통해 갑자기 묵직한 가스가 쏟아졌다. 콧등이 아팠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뭘 몰라서 그랬을까. 잘못 먹어서 그랬나 싶었다. 하지만 두 누나에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기억은 거기까지다.

터미널 차가 들어오는 입구, 분리대에 올라서서 서울행 차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던 장면도 내가 경험한 것인지, 내가 본 것을 기억하는지 잘 모르겠다. 누나는 막내누나와 나를 먼저 시외버스를 태워 보내고 서울로 올라갔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서울로 떠나는 배웅을 했을 리가 없다. 틀림없이 누나는 떠나는 버스에서 콜라만큼 까맣게 그을린 마음을 대놓고 펑펑 울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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