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의 글 하나

by 홍반장 posted Jun 0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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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게서 선망의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행복은, 오로지 우리들이 숨 쉬었던 공기 속, 그러니까 우리가 한 때 말을 나눌 수도 있었던 사람들과 우리들 품에 안길 수도 있었던 여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행복의 이미지 속에는 구원의 이미지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함께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 주로 관심을 가지는 과거의 이미지도 이와 동일한 양상을 하고 있다. 과거는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어떤 은밀한 목록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 우리들 스스로에도 이미 지나가 버린 것과 관계되는 한줄기의 바람이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들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 속에서는 이제 침묵해 버리고 만 목소리의 한 가락 반향이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들이 연연하는 여인들은, 그녀들이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누이들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과거의 인간과 현재의 우리들 사이에는 은밀한 묵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고 또 우리는 이 지구상에서 구원이 기대되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앞서 간 모든 세대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도 희미한 메시아적 힘이 주어져 있고, 과거 역시 이 힘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 

- 발터 벤야민, <역사철학테제> 2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