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43 추천 수 0 댓글 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삶은 극복되는 것이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라는 말처럼 허망한 말도 없다.

삶에서의 행복은 고통을 떨치거나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것이다.

무뎌지는 모든 것은 지혜롭다.

 

 

이러한 교수취임논문의 내용을 조금 수정하여 보충하려던 칸트는 이 논문의 중요한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고 새로운 반성을 시작하게 된다. 1772년 2월 21일 칸트는 교수취임논문 공개 발표 때 자신을 변론하기 위해 그 자리에 참석했었던 제자 ‘헤르츠’(Marcus Herz)에게 편지를 보내 그간의 생각의 변화와 앞으로의 계획에 관해 알리게 된다. 이 편지에서 칸트는 ‘우리의 표상이 대상과 관계 맺는 것은 무엇에 근거하는가?’라는, 이전의 형이상학적 연구들이 소홀히 했던 본질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이 문제에 답하는 것이 바로 형이상학의 전체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칸트는 어려서부터 허약체질이었지만 규칙적인 생활과 건강관리로 강의, 연구, 저술 활동을 별 어려움 없이 이어갈 수 있었다. 그가 하루도 어김없이 정해진 시각에 산책에 나섰기 때문에, 쾨니히스베르크 시민들의 산책하는 칸트를 보고 시계의 시각을 맞췄다는 얘기, 그런데 장 자크 루소의 [에밀]을 읽느라 단 한 번 산책 시간을 어겼다는 전설은 유명하다.

1799년부터 크게 쇠약해진 칸트는 1804년 2월 12일 늙은 하인 람페에게 포도주 한 잔을 청해 마시고 “좋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긴 뒤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 날 쾨니히스베르크 시 전체가 휴무에 들어갔고 운구 행렬에 수천 명이 뒤따랐으며 시내 모든 교회가 같은 시간에 조종()을 울렸다. 철학자 칼 포퍼는 이에 관해 [추측과 반박]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1804년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절대왕정 치하에서 칸트의 죽음을 애도한 그 많은 교회의 종소리는 미국 혁명(1776)과 프랑스 혁명(1789)의 이념이 남긴 메아리였다. 칸트는 고향 사람들에게 그 이념의 화신이었다. 인간의 권리와 법 앞의 평등, 세계 시민권과 지상의 평화,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식을 통한 인간 해방을 가르친 스승에게 고향 사람들은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몰려왔다.”


오늘의 생각 하나

오늘을 시작하며 혹은 마치며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2 비가 쌓일 때 홍반장 2015.06.24 75
101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1 홍반장 2015.06.22 106
100 비 오는 날 홍반장 2015.06.20 88
99 기억을 잃는다는 것 홍반장 2015.06.17 114
98 글에 대해 홍반장 2015.06.16 76
97 의사의 조언 홍반장 2015.06.16 81
96 더운 여름날에 파가니니 홍반장 2015.06.15 132
95 그것과의 대화 홍반장 2015.06.14 78
94 사람이 만든다 홍반장 2015.06.12 61
93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겼다 홍반장 2015.06.08 77
92 어리석음 홍반장 2015.06.03 52
» 칸트를 생각하며 견디다 2 홍반장 2015.06.02 343
90 모면의 기다림 홍반장 2015.05.29 70
89 뭔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홍반장 2015.05.28 143
88 선암사 연못에 비친 2 file 홍반장 2015.05.25 124
Board Pagination Prev 1 ...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 29 Next
/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