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24 12:40

굿바이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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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겨레21에 실린 굿바이 노무현에 대한 소심한 반항으로 2009년 4월 24일 쓴 글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제목은 너무나도 처절한 현실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오래 묵은 사람이 아닌데도, 아주 오래되었을 만한 기억들을 아주 잘 저장하고 있다.

  내 나이에 비춰 부모님의 많은 나이 때문일 수도 있다. 그 기억들은 그분들에게서 물려받은 경험들이 오롯이 내게 남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 본다.

  국민학교 몇 학년 때, 까만 어둠의 농도만큼 추운 겨울날, 외할머니께 몇 번을 들었지만 어딘지도 모르는 동네 이름을 외며, 바구니를 팔러 나가신 어머니께서 돌아오신다는 날을, 어디 농약사에서 가져다 준 커다란 달력에 몇 밤 몇 밤 손꼽아 기다렸었다. 대나무 바구니를 팔고 돌아오실 어머니는 누나와 나를 위해 꼭 뭔가를 사들고 오셨었는데, 아마도 사실 난 그 뭔가를 더 기다렸었는지도 모른다.

  눈이 푹푹 떨어져서 꺼멓게 추웠던 어둠컴컴한 날에 대문에 어머니께서 막 나타나시면, 손에 들고 있는 보따리를 나는 추운줄도 모르고 한참을 마루에 서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다 풀리기도 전에 거의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를 위한 선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하지만 그 기대가 처절한 실망으로 이어지더라도, 나는 다음 날이면 금세 잊을 수 있었다. 어린 내겐 돌아오신 어머니만으로도 훌륭한 선물이었다. 열흘 정도, 길면 스무날 정도 비우셨던 "어머니"의 자리가 어린 나는 너무 싫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돌아오신 어머니. 고단하고 힘들었지만, 내게 넉넉하게 해주시지는 못했지만, 어린 시절 "그 자리"에 꼭 있어야 할 사람, 어머니.

  그런 사람이 내겐 노무현이었다.

  물론 결단코 어머니와 비할 수 있는 사람이란 의미는 아니다.

  나를 위한 아무런 선물이 없어도 아주 오래 비워두었던 자리에 돌아온 것만 같은 그 노무현이라는 사람. 오랫동안 비워두었던 것만 같은 그 자리. 당선 소식을 숨가쁘게 쏟아내던 그때 아마 눈이 조금 왔었을 것이다. 가슴이 조금 시렸던지 눈시울이 더 시렸던지. 어디 내놓은 지지자도 못 되었던 내가 왜 그리 좋아했을까.

  어느 잡지에서 표지 아래 커다랗게 “굿바이, 노무현”이라고 했다. '노사모'의 의미 변화에 대한 재미있는 설명도 곁들였다. 여러가지 이유로 참담함이다.

  많은 선물 보따리를 풀어내지는 못했지만, 들고 온 성과도 없었고 오히려 여기저기 추문이 있고 욕설이 있지만, 난 꼭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나는 애써 두둔하고 싶다. 똑 그렇지는 않지만 "제자리"에 돌아온 어머니께서 실망을 내밀었다고 굿바이, 어머니라는 말을 절대 할 수 없는 내 입장에서 어린 시절의 내 마음처럼 그냥 그렇게 둘 수밖에 없는 그 모습처럼 남기고 싶다.

  그리고 그 뒤 삶의 과정에서 더 많은 실망을 주고 여전히 고생만을 반복하던 모습으로 남겨진 그 둘을 나는 그렇게 남겨 두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난 “굿바이, 노무현”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당선 소식이 쏟아지던, 눈이 내리던 그 날처럼 모로 닮기도 한 불편한 마음이 자꾸 들었다. 그럼에도 절대로 환부를 도려내듯이 기억을 도려낼 수는 없는 일이다.

  스스로 지나치게 감상주의적이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면서도 난 조용히 그 제목을 혼자 바꾸어 읽어 본다.

  “굿가이,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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