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긴 나무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라는 말이 있다.
혹시 못들어 봤을까. 그래도 있다. 난 이 말이 가끔 우리나라의 정치에 잘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근대화의 기형적인 정치 지형의 탄생에 기득권의 지배적인 영향이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좌우의 대립이 아닌, 일방적 기득권 계층의 헤게모니에 의해 묘한 형태의 정치권력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 정치 권력은 누구나(?) 쉽게 넘볼 수 있게 되었고 이 사람 저 사람 권력을 쥐면서 그 권력은 국민이, 국민은 권력을 우습게 알게 돼 버렸다. 결국 모든 국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무색해졌다. 결국 권력도 국민도 서로를 온전하게 인정하기는 힘들어지게 되었고, 지금의 젊은 세대는 -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 제사상에 오르는 고사리나물이나 명태전처럼 친숙하면서도 어색한 "정치"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어쩌면 이 기묘한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평소에도 고사리나물이 밥상에 오르는 일은 이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의 양식에 제사는 필요한 행사이고 그 음식들도 꼭 거기에 필요한 것들이다. 난 그 필요성이 외부로부터 강제되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부적인 애증으로부터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낯 모르는 증조할아버지 제사가 아니라 우리를 키워주신 외할머니 제사라고 생각한다면 좋아하셨던 음식을 올리는 정성이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미 우리 정치는 뒤틀리고 누워서 아주 못생긴 나무가 되어 있다. 하지만 그 나무야말로 더 오래되고 굵어질수록 어쩌면 더 아름답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너무 기운 그 나무에 버팀목을 놓아 쓰러지지만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