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쓰레기 생활 때 (스물 살 무렵 : 저 쓰레기라는 단어는 우리가 만들어낸 단어였다.) 나는 하루에 세 편씩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그 때의 하루 일과는 새벽에 목욕탕 수면실에서 잠들거나 아침에 잠들어 점심 무렵 일어나, 중국집 음식을 시켜 먹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어느 지하 퀴퀴한 카페에 들어가 저녁이 되도록 공상을 떨며, 암담한 미래는 잊은 척 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그리고 라면집에 늘 다른 듯한 비슷한 메뉴를 시켜 먹고 그 위층 당구장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떠들면서 죽을 때까지 쳐도 질리지 않을 것같은 당구를 치고 새벽 한 시 정도가 되면 비디오가게로 가서 비디오 몇 편을 빌렸었다.
우리에게는 비디오테이프를 빌리는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진지한 것 하나, 웃긴 것 하나, 야한 것 하나.
이렇게 세 편을 빌려서 친구 형님이 운영하시던 레코드 가게에서 영화를 보았다. 보다 보면 밖은 밝아 있었고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있었다. 본의 아니게 전국 최초로 24시간 영업하는 레코드 가게였다. 정말 새벽에 지나다가 가게에 레코드를 사려고 들어오는 손님이 있었다. 친구 형님은 그런 우리들에게 무척 관대하셨다. 오전에 중국집 음식을 시켜 먹고 오후에는 우리가 가게를 잠깐 봐주면 그걸로 숙식비는 대신 해결해 주셨다.
대학가 근처에서 기생하던 우리는 어떤 걱정이나 희망도 없었다. 삶은 어둡지도 밝아지지도 않는 희미한 새벽의 빛이었다. 어쩌다 누군가에게 돈이 생기면 우리는 술을 마셨다. 그리고 새벽에 거리로 나와 가장 긴 담배꽁초를 골라 피고 길거리에서 떼로 노상방뇨를 했다. 그리고 지나가던 누군가에게 시비를 걸기도 했다. 그땐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영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난 글을 조금 쓰는 편이었고 영화와 음악을 좋아했고 다른 할 줄 아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할 수 있다면 영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서 시나리오 작법이라는 책을 샀지만, 책이 너무 재미 없었다. 시나리오는 정작 한 번도 써 보지 못했다.
하루 일과가 거의 오차 없이 저렇게 진행되었다. 누군가에게 여자친구가 생기고 누군가는 가끔 하루 안 보이기도 했지만, 늘 대여섯의 숫자는 그대로였다.
앞으로 살면서 내가 그렇게 많은 영화를 다시 볼 날이 있을까. 절대로 없을 것만 같다.
벌써 많은 시간이 흘러 그때 어떤 영화들을 봤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을 짜내고 짜내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처럼 영화에 대한 골몰함에 빠져봐야겠다.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때 보았던 영화 중에 기억나는 영화는 아무래도 총알 탄 사나이 시리즈다. 이 영화는 수준 이하로 유치하다. 그렇지만 당시 우리들에게는 너무 비슷한 행동들이 많았기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충분했다. 정말 덤앤더머는 아무 것도 아닌 수준일 수도 있다. 그 황당한 장면들에 비하면 말이다.
머리가 하얀 레슬리 닐슨 아저씨를 우리는 정말 사랑했고, 그의 모든 영화를 다 찾아보았었다.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이 영화를 만든 데이빗 주커 감독은 폰 부스나, 구름 속의 산책 같은 영화를 제작했다. 왜 그런 엉뚱한 짓을 했는지. 총알 탄 사나이 시리즈를 다시 보고 싶다. 그 때 거기서 그 친구들과.
미안하다, 친구들아.